거룩한 곳에 가증한 것들을 두려고 하는 자들

 마태복음 24 2-3절에서『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문자적으로 보면 거룩한 성전(예루살렘)에 로마 군대가 둘러싸서 성전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시는데,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제자가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며, 세상의 마지막 때는 무슨 징조가 있는가를 질문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제는 성전에 관한 이야기다. 성전은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전과 신약에서 성령이 함께 하는 성도들의 마음 속에 있는 성전을 의미한다. 성도들이 예배당에 모여있을 때, 그곳을 교회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 건물 자체를 성전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전 건물은 무너지고(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전이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의 주제는 세상 마지막 때의 성도들의 마음 속에 있는 성전에 관한 이야기다.

마태복음 24 15-16『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만 하는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죄인들을 위해 대속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십자가의 죽음은 영원한 대속의 제사인 것이다.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것은 가증한 것이 영원한 대속의 제사를 폐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증한 것은 무엇인가? 사탄인가? 물론 사탄과 관련이 있지만, 다름아닌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가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속의 제사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자에게 영원한 대속이 된다. 이외의 어느 것도 이와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영원한 대속의 제사를 폐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것을 보고 깨닫는다면 신속히 복음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산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곧 성도는 성령이 임하는 마음으로 돌이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왜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가 복음을 폐하게 만드는가? 인본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간 중심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고 변궤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출애굽한 백성들은 두명(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 가나안에 살고 있는 아낙자손을 바라보고 들어가면 죽는다고 통곡하며 울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은 자의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시는데, 교회 사람들은 육적 상태를 바라보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데,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속을 부분적으로만 믿는 것이다. 원죄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죄를 사하심을 믿지만, 세상죄는 과거의 죄만 사하시고 현재 미래의 죄는 계속 회개해서 예수의 피로 죄 사하심을 받아야만 한다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죄를 묻지 않으신다. 죄에 대한 회개가 아니라 죄에 대해서 죽으라는 것이다.

율법주의는 율법과 다른 개념이다. 율법과 율법주의를 구분하는 것은 구원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율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의에 이르도록 명령하셨다. 백성들은 율법의 계명들을 지키려고 했으나 지킬 수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동물의 희생제사를 통해서 죄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너희들은 모두 죄인들인데, 율법을 통해서 그러한 사실을 깨달으면, 희생제사를 통해서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이렇듯 율법 속에는 그리스도가 숨겨져 있다. 따라서 율법은 엄밀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것이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율법주의는 그리스도를 제거한 사상인 것이다. 교회 안에서 만연한 율법주의 사상은 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세우게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이다. 십계명 속에서 죄를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계명에 얽매여 그것을 지키느니 마느니 하는 것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계명이지만,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규정에 얽매이게 하는 것이 율법주의다.

영지주의 사상은 인간에게 신성이 있는데, 물질인 육체에 영이 갇혀있어 신성이 감추어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혜를 통해서 신성을 회복하여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지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어떤 하나의 형태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적 견해가 다양하다. 스스로 수련하여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부류, 신적인 존재로부터 계시를 받아서 신의 아들이 되고, 그의 말을 믿는 자에게 신이 그렇게 해 준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마태복음 24 23절에서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그들은 대개 육체는 악하고 영혼은 신성하며, 죄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어쩌면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가 영지주의의 한 분파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기독교에 이런 사상이 들어왔다면 아마도 놀라울 것이다.

영지주의 사상은 교회 내에서 두가지를 왜곡시킨다. 하나님의 형상을 마치 하나님의 성품으로 둔갑시켜, 거룩한 생활을 통해서 회복할 수 있겠끔 여기게 만들고,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죄의식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 근본이 아니라, 계명을 어기겠끔하는 탐욕(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다. 영지주의 사상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것을 죄로 여기지 않으며,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계명을 어기는 것을 죄로 여기므로, 계명을 지키는가 아닌가에 몰두할 뿐,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다.

인본주의와 율법주의와 영지주의를 종합해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 중심으로 변궤시킨다. 특히 성경은 히브리어(구약성경)와 헬라어(신약성경)으로 되어 있는데,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많은 변궤가 이루어졌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영어 성경에서도 NIVKJV도 많은 차이가 있다. 특히 우리말 성경은 영어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전혀 다른 의미로 번역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영어 성경과 대조하여 우리말 성경을 해석해야 함에도, 우리말 성경에 의존하는 목사들이 많이 있음을 짐작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뜻과 전혀 다른 의미로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로마서 3 22절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예수 그리스도의 믿음』(faith of Jesus Christ: KJV)이다. NIV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라고 되어있다. (faith in Jesus :NIV) 그리스도의 믿음이나 그리스도 안의 믿음은 단순히 이름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것을 믿는 믿음인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번역하므로 오해가 생기되는 것이다.

믿음은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인데, 예수의 이름만 믿으면, 모든 죄로부터 사하심을 얻는다 라고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진리의 말씀이 교회 안에 없는 것이다. 십자가의 핵심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탐욕)의식이 없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인데, 율법의 규정에 따라 세상죄에 대해서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이 주신 성품으로 이해하고 스스로 열심히 거룩한 생활을 해서 이루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를 내세우는 이방 종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 24 32절에서『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일들이 만연하면, 마지막 때가 다가 온 것으로 인식하라고 성경은 말한다. 수많은 교회 안에서 이미 말씀이 왜곡되고, 복음과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가 혼합되어 있으며, 신도들은 마음 속에는 이런 것들이 신앙의 본질로 자리 잡고 있다. 세상 속에서도 물질만능으로 인간의 마음은 하늘이 아니라 땅을 향해 가고 있으며, 기후변화로 천재지변의 발생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지식을 대체할 인공지능의 발전과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방향으로 생명공학이 엄청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영생을 추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 놓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2437-39절『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들은 성경말씀을 먹고 마신다고 하고, 그리스도를 신랑이라고 말을 하지만, 자신들이 가증한 것들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길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빨리 마음을 돌이켜, 자기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죽음 안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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