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와 셋째 하늘에 대해서
1 하나님 나라의 개념
1) 천국과 하나님 나라
성경에서는 천국이라는 용어와 하나님
나라가 등장한다. 천국은 마태복음 3장 2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라고 하고, 5장 3절에서『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했다. 헬라어를 보면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이다. 헤 바실레이아는 왕국이고, 톤 우라논은 문법적으로 관사가 있는 복수 명사로서 성도들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라고 번역된 것은
사도행전 19장 8절에서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라고 되어있다. 헬라어를 보면
『테스 바실레이아 투 데우(τῆς βασιλείας τοῦ θεοῦ)』로 되어 있다. 성부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왕국이라는 의미다. 보통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투 데우는 관사(투τοῦ)가 있는 것으로 성부를 의미한다. 관사가 없을 때는
성자를 나타낸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이렇게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천국이라고 번역된 톤 우라논은 성도의
심령에 성전이 세워지고, 그 성전에 임하시는 호 로고스가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바로 성도의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셔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가 바로 하나님 나라이며, 곧
호 로고스가 성령의 능력으로 다스리는 나라인 것이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며,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와 연계해서 살펴보아야만 한다. 테스 바실레이아 투 데우(τῆς βασιλείας τοῦ θεοῦ)는 첫째, 둘째, 셋째
하늘을 모두 포함하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인 것이다. 따라서 셋째 하늘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풀어보면, 예수님이 하신 천국에 대한 말씀이 저절로 이해가 되는 것이다.
2)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삼위일체의
하나님 나라
국가를 규정하는 것이 세가지이다. 권력과 영토와 국민이다. 이를 하나님 나라와 비교하여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로 권세와 영토 개념의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것이다.
(주권:삼위일체의 하나님)
하나님은 곧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를 왕으로 비유했다. 마태복음 18장 23절『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태복음 20장 1절에서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마태복음 22장 2절에서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따라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곧 삼위일체의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나, 삼위의 하나님으로 역사를 하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나
통치의 방법에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성부는 보좌의 하나님으로, 성자는 창조주로, 성령은 창조된 모든 것을 연결하고 운행하신다.성부 하나님과 성자와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나타나시며, 그
구분은 분명하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인 성자는 오직 성부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한다고 말한다. 자의적으로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는데, 이 부분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4장 8-10절에서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세번째 시험은 사탄이 예수님께 엎드려 자기에게 경배하라고 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4장 6-7절에서는 좀 다르게 표현했다.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님이 이 세상을 자기(마귀)에게 넘겨준 것이라고 마귀(사탄)는
말한다. 사탄이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말이 성립하는가? 사탄이
시험하는 의미는 성부 하나님이 세상의 권세를 자신에게 넘겨준 것이므로 이것을 하나님 아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그 조건으로 경배받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 아들을 성부 하나님 자리에 앉게 만드는 일이다. 사탄이 예수님을 이렇게 시험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 자신임을 인식하게 하고, 하나님 아들을 성부의 자리에 앉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생각 속에서 스스로 내가 하나님 자신이 아닌가 라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사탄의 고도의 계획된 시험인 것이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목적은 예수님이
이르시게 하는 일을 방해하기 위함이다. 사탄이『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라는 시험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데, 『경배하라』는 말의 의미는 다른 목적을 갖는다. 물질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셨는데, 사탄이
왜 이 세상의 임금인가? 누가복음에서『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하나님이 왜 이 세상을 사탄에게 넘겨주었는가?
사탄이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했다. 사탄이 하나님없이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떠나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를 아시고, 그를 물질세계에 가두어 버렸다. 그래서 성경은 사탄이 공중 권세를 잡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사탄을
물질세계에 가두고, 원하는 너의 왕국을 건설해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임금을 사탄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2장 31절에서『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요한계시록에서도 사탄이 공중에서 이 땅으로 쫒겨난다고 말씀하셨다.
요한1서 2장 15-16절에서『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이 세상의 모든 것이 세상의 임금인 사탄으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사탄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사이의 분열을 야기시키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 역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능력을 부여받았을 때,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이 비로 이 유혹인 것이다. 이 유혹은 사탄이 처음 가진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다. 하나님 자리에 앉고 싶은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이러한 탐욕의 마음이 있는 것이다.
(삼위일체의 하나님 나라)
창세기 1장 1절에서『태초에 하나님이 천( הַשָּׁמַ֖יִם 하샤마임) 지(הָאָֽרֶץ 하에레츠)를 창조하시니라(바라)』샤마임은
하늘이지만, 앞에 하라는 관사가 붙어서 하샤마임이 되어 있는데, 그 하늘이다. 특정한 하늘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는 여러 개가 아니라 하나이다. 여호와
하나님도 한 분이시다. 그런데, 범죄한
천사들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이 깨져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그 첫번째 계획으로 범죄한 자들을 물질세계에 가두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첫사람 아담이 되어서 죄의 몸을 주고, 다시 마지막 아담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려주는 영의 몸을 주신 것이다. 인간이 바라볼 때 하나님은 삼위의 하나님으로 보여진다. 성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도 이와 같은 개념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눈으로는 성부 하나님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성령으로 연결된 나라로
비춰지게 된다. 물론 이 세 하나님 나라는 하나이다. 삼위
하나님이 하나이듯이 세 하나님 나라도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통치 방식에 따라 세 하나님 나라로 나타나는 것이다.
첫째하늘
첫째하늘은 성부가 보좌에 계신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성부 하나님이 영으로 임재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아무도
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서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둘째하늘
둘째 하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영의 몸을 입고 임재하시는 아들의 나라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누가복음 24장 39절에서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골로새서 1장 12-13절에서『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셋째하늘
에덴동산이라고 하기도 하고, 새하늘과 새땅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서 셋째하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 하늘은 첫사람 아담이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는 나라가 된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 자신을 의미한다. 그래서 임마누엘이 되는 것이다.
셋째하늘의
존재들은 영생을 하며, 신령한 몸을 입고 있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신령한 몸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소마 프뉴마티콘(영의 몸)이다. 그들은 둘째하늘의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차별이 있는 신령한 영의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셋째하늘이 바로 잃어버린
에덴동산이며, 이 땅에서 회복해야 할 하나님 나라(톤
우라논)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이지만 셋이다. 첫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셋째하늘은 성령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운행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세가지의 형태로 인간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서
죄인들이 가는 감옥도 그 나라 안에 존재하므로 갇혀 있는 나라인 것이다. 감옥이 없어지면 갇혀있는
나라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셋째하늘이라는 의미는 이 세상이 감옥이라는 전제하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감옥이 된 후에 언젠가 다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간다. 이
감옥과 관련하여 설명하기 위한 하나님 나라가 바로 셋째하늘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세 하늘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연계되기 때문이다.
(백성 : 천사들)
누가복음 20장 35-36절에서 육체를 벗은 자들은 천사로
돌아간다고 말을 한다.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모두 천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천사의 옷은 영생하는 몸이며, 하나님의
권능을 부여받는 옷이다.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지 못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자녀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셋쩨 하늘로 들어간다.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자가 된다. 그들은
회개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비록 거듭나 새생명으로 태어나도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대개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 성경 말씀 속에서 얻은 그 감동은 세상 속에 살면서 여러가지 유혹과 어려움 속에서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회개하고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하는 모습을 본다. 이 상황 속에서는 거듭난 자의 모습인지 율법 속으로 다시 들어간 자의 모습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경우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세상 속에서 살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많은 미혹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미혹을 물리치고 하나님 나라의 뜻을 깨닫게 된다. 로마서 8장 26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말씀 속에서 깨달음이 오기도 하고,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서도 깨달음을 주시고, 기도 중에서도 감동 감화를 받게 되는데, 하나님과의 영적 교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믿음의 성장과정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만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을 수 있다. 세상 속에서도 기업의 회장이 자녀가 여럿이 있는데, 기업을 물려주는 것은 맏아들에게 물려주고 나머지에게는 재산을 나누어주는 것을 볼 수 있듯이, 회장 자리는 자식이라도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의 기업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녀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
성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게 되는데, 아무나 기업을 얻는 것이 아니다. 기업을
얻는 자는 바로 둘째 하늘인 아들의 나라로 가는 것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함을 깨닫고 사도적 사역을 소명으로 수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세례를
받고 능력을 부여받는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적을 쳐부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사탄의 권세를 쳐부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호 로고스(말씀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권능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호 로고스는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성도가
그 분을 깨닫지 못하면 아들이라고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권능을 주신 것과 같이 호 로고스께서 그의 안에 있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도록 권능을 부여하는 것이다. 호 로고스는 아들과 직접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놀라운
은혜를 베푸신다. 기적을 나타내게 하시고, 예언을
하게 하시고, 각종 은사를 베푸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2장 10절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따를 수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열처녀의 비유와 달란트의 비유가 등장하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받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미련한 다섯처녀는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자를 상징한다.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상징한다.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하나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자녀와 아들은 다른 개념이다. 달란트 비유는 사역자에 대한 비유다. 하나님으로 부터 소명을 받아 사역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는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지만 아들이 된 자에게 하나님이 기업을 주신다.
2. 셋째하늘
1) 셋째하늘의 개념
고린도후서 12장 2-4절에서『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하늘(트리투 우라누)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파라데이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셋쩨하늘을 트리투 우라누라고 표현했다. 톤 우라논(τῶν οὐρανῶν)은 복수로서 성도들의 심령 속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이고, 단수인
우라누는 개인의 심령 속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그래서 트리투 우라누는 셋째하늘로서 성도의
심령 속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셋째 하늘을 낙원(파라데이손 παραδεισον)이라고 표현했다.
누가복음 23장 43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파라데이소 παραδεισω)에 있으리라 하시니라』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두명 중 하나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는 23장 41절에서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이는 회개하는 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23장 42절에서『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τη βασιλεια)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당신의 나라에서는 왕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결국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이때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행악한 자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육체가 죽어서 가는 나라로 생각한
것이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낙원인 것이다.
낙원이라고 칭한 셋째하늘은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가 쫒겨나기 전의 에덴동산이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
있다. 이사야 51장 3절에서『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회복된 에덴동산에서의 모습을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이사야 65장 25절에서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1장 1-2절에서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새예루살렘 성을 요한은 계시록에서
다시 표현한다. 계시록 21장 18-21절『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
새 예루살렘의 성곽과 성곽 기초석의 재료에
대해 말한다. 이 보석들을 이와 같이 나열하고 있는 이유는 보석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새 예루살렘이 이와 같이 귀한 보석으로 차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애굽기 28장 17-20절을 보면 대제사장의 가슴에 착용했던 흉패에도 열 두 보석이 있고, 그곳에 12지파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구원의 계획의 완성으로 각 지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보석과 같이 아름답고 흠 없이 빛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보석과 같은 존재들이다. 보석이라도 다 같은 색과 모양으로
빛나는 보석이 아니라 다양한 빛깔들과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보석들이다. 그러나
보석은 찾기 힘든 귀하고 보배로운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보석 중에서도 진주는 고난의 상징이다. 고난을 이겨낸 자들이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셋째하늘은 낙원이며, 회복된 에덴동산이며, 새하늘과 새땅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성도는 셋째하늘이 심령 속에 들어오는 성소가 된다.
2)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유다서 1장과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 말하고 있다. 유다서 1장 6절에서『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내용이다. 창세기 1-3장의
내용은 창세 전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주된
내용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것이었다. 계명을 어긴 것이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마음이 생긴 것이 죄의 근본이다.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서 계명을 어긴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3절『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쫒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들을 하여』
모든 인간은 허물과 죄로 죽아있다. 허물은 세상죄를 말하고, 죄는 원죄를 말한다. 원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다. 이게 바로
옛사람이며, 악인 것이다. 세상죄는 용서의
대상이 되지만 악은 죽어야만 한다. 악(옛사람)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못박혀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을 가두기
위해 감옥을 지으셨는데, 감옥이라는 것도 하나님 나라에 존재하는 일부이다. 어떤 나라에서도 감옥이 있다. 그러나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곳이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비추는 광채를 셋째하늘에는 거두어 들이고 흑암으로
만드시고, 나아가 물질세계를 창조하시고 흙으로 된 인간도 만들어 범죄한 천사들을 가두어 두셨다. 그 곳이 오늘날 인간들이 사는 세상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이사야 61장 1-2절을
인용하셨다.『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의 성령이
예수님께 임하실 때 이 세상에는 큰 변화가 있게 되었다. 소외되고 억눌린 자들이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되는 자들이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는 자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
말은 영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영이 죽어 있으며,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세상에 갇혀있으며, 사탄의
지배 하에 눌려 있는 자들을 말한다. 이러한 자들에게 성령이 임한 예수님께서 복음을 들고 오셨다. 그래서 눈먼 자들이 보게되고, 갇혀있는 자들이
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원래 에덴동산이었는데, 천사들이 범죄하므로 하나님이 빛을 막으시므로 에덴동산은 사라지고, 물질세계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셨는가? 천사의
옷을 벗기고 흙으로 된 육체 속에 타락한 영을 넣으시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점차 깨닫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되어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지 살아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인의 후손을 약속하시고
구원의 길을 알려주시고,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인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약속보다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으로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죽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인간들에게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구원의 길을 알려주셨다. 희생제사를 통해서 장차 오실 그리스도(여인의 후손)를 바라보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선지자나 율법을 통해서
알려주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하나님을 잊어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홍수를 통해서 충격요법으로 알려주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출애굽이라는 사건을 통해서도 알려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자들은
극히 적은 숫자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예정된 약속대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이다. 그와 연합되어 죽는
자는 다 구원시켜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악한 영들이 다 육체를 통과할 때 하나님은 감옥을
해체하고 에덴동산을 원상복구 시켜주실 것이다. 마지막 때는 양과 염소와 나누어지듯이 심판을
통해서 의인과 악인으로 나누어지고 그에 상응한 결과가 주어질 것이다.
3) 천사들의 범죄에 따른 하나님의
구체적인 실행(그리스도의 예정)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로 인해서 안식이 깨어지고, 하나님이 직접 그리스도가 되셔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원래대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일을 예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삼위의 하나님으로 역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나뉘게 된다. 성부의
하나님을 보좌의 하나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 하나님, 성령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이다.
오늘날 신학에서는 예정론에서 두가지의 예정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창설하셔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셨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금령인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 하나님께 죄(원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세
전에 이미 이렇게 될 줄을 아시고, 그리스도를 예정하셔서 죄인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논리다.
둘째, 하나님이 창세전에 성도들을 구원하기로 미리 선택했다는 것이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스스로 구원할 능력이 없는 인간을 선택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하며,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주권을 강조한다. 예정은
은혜로 어떤 사람들을 영원한 구원으로 선택하였고 반면에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죄로 인해 영원한 심판을 받도록 하나님이 내버려두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예정에
담긴 내용을 살펴보면, 범죄한 천사들을 가두기 위하여, 하나님의
빛을 차단하고 물질세계를 만드는 일, 세상에 던져진 영들을 어떻게 회개하게 하여 구원할 것인가, 셋째하늘을 다시 회복하게 하는 일이다.
(범죄한 천사들을 가두기 위한 물질세계의 창조)
계명성(히브리어 헬렐, 헬라어 루시퍼)이라는 이름을 가진 천사장,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탄이다. 천사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사탄을 따라 하나님을 대적했던 것이다. 그 죄목은 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은
셋째하늘에 대해서 하나님의 빛을 차단하여 영적으로 어두운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창세기 1장 1절『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의 의미는
하나님 나라의 빛을 차단하여 물질세계를 만들었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세계가
곧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이다. 물론 일정기간 하나님의 빛이 차단되므로 흑암의 곳이 되기는 했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하나님이 다시 빛을 비춰주셔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이 셋째하늘을 에덴동산이라고 하며, 회복된 후에는
새하늘과 새땅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중요하다.『하늘(샤마임) 땅(에렛쯔) 창조하다(바라)』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하늘(샤마임)에 대해서 구약에서는 모든 우리가 아는 하늘을 다 샤마임 이라고
했다. 푸른 하늘도 샤마임, 우주공간도
샤마임,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도 샤마임으로 칭한다. 구약에서는
모든 하늘이 샤마임이다. 구약에서 샤마임이라고 할 때 이 하늘은 어떤 하늘인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앞뒤 문맥을 살펴서 3가지 중 어느
하늘인가를 생각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즉『샤마임과
에레쯔를 바라 하시니라』에서 신명기에서 보면, 신명기 26장 15절에서『원컨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하감하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찌니라』여기서『원컨데 주의 거룩한 처소』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다. 하나님
나라를 샤마임으로 쓰고 있다. 이 샤마임은 창세기 1장 1절에서 사용하는 샤마임이다. 열왕기상 8장 30절에서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열왕기상에서 말하는 하늘도 하나님의 나라로서
샤마임이다.
그러면 창세기 1장 1절의 하늘(샤마임)은 어느 곳인가? 창세기 1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이 궁창(샤마임)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이 궁창은 창세기 7절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창세기 1장 1절에서 말하는 하늘을 창세기 1장 8절의 하늘과 같이 본다면 태초에 하늘(궁창)을 만들고 창세기 1장 7절에
만든 하늘(궁창)이 겹쳐지므로 논리에 안맞게 된다. 따라서 창세기 1장 1절의 샤마임은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말하는 하늘은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에 땅(에렛쯔)인데, 창세기 1장 9절에 보면『하나님이 온 천하에 있는 물을
한 곳으로 모으시고 물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 뭍을 땅이라』하셨다. 그 땅이 에레쯔 이다. 그러면 창세기 1장 1절에서 말하는 에레쯔와 중복이 된다. 창세기 1장 1절에 땅이라고 말한 후 1장 9절에 땅이라고 말한 것을 같은 땅이라고 말하는
자도 있을지도 모르나 창세기 1장 1절에서
말하는 땅은 우리가 말하는 물질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땅에 대해서
창세기 1장 1절에서『만들었다』라고 하고
또 창세기 1장 9절에서도 땅이라고 했다. 즉 중복 이름을 짓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창세기 1장 1절의 땅은 지구의 땅이 아닌 물질세계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질세계는 물로 덮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하다』라고 번역된 단어의 히브리어는『바라』다. 그런데,『바라』라는 단어의 의미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 이사야 45장 7절을 살펴보면『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여기서『짓다』라는 단어가『바라』라는
단어다. 여기에서『어둠』은 창세기 1장 2절에서 말하는『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의
흑암과 같은 단어다.
어둠이 생기는 것은 빛이 사라지면
저절로 나타난다. 평안이 사라지면 저절로 환난이 된다. 요한1서 1장 5절에서『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빛을 막으시므로 어둠이 되는 것이다. 바라
라는 단어의 의미는『분리하다, 잘라내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 물질 세계는 하나님 나라의 빛을 막으시므로(바라) 어둠이라는
물질세계가 되어진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로부터 물질세계(세상)를 분리해 내었다
라는 말씀이다. 한 나라에서 감옥이라는 곳을 설치해서 분리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하나님 나라로 부터 분리되므로 흑암과 공허함이 있다. 1장 2절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1장 2절의 부분은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וְחֹ֖שֶׁךְ עַל־פְּנֵ֣י תְהֹ֑ום
땅(물질세계)이 심연의 얼굴 위에 흑암, 공허, 혼돈으로 존재했고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פְּנֵ֥י הַמָּֽיִם׃
하나님의 영이 그 물의 얼굴 위에
운행하고 있다.
פְּנֵ֣י 페네(얼굴)이 1장 2절 앞부분의 번역에서 빠져 있다.
『심연의 얼굴 ְּפְּנֵ֣י תְהֹ֑ום 』(페네 태홈)은 『깊은 물의 얼굴』을 의미하며, 얼굴은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영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심연의 얼굴은 깊은 물 속의 얼굴로서 물질세계에 갇혀있는 영을 의미하다.
『그 물의 얼굴פְּנֵ֥י הַמָּֽיִם』(페네
함마임)은 『흐르는 물의 얼굴』이다. 생명이 있는 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이
살아있는 영에 역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셋째하늘에 있는 모든
자의 권세있는 옷을 벗겨버렸다. 감옥에 들어가면 세상의 옷을 벗기고 수의를 입힌다. 수의가 바로 육체라는 옷이다. 창세기 3장 10절에서 범죄한 후의 모습을 나타낸다.『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범죄한 자는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이다. (이들은 범죄한 천사를 나타낸다) 첫사람 아담이 범죄한 것이 아니라 여자 하와가 먼저 범죄하고 남자 아담이 그것을 먹었다.
첫사람 아담(그리스도)은 에덴동산에서 주인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그리스도)을 가진 자다. 또한 범죄한 천사들에게 죄의 몸을 주기 위해
세상에서 창조된 자임을 표현한다. 세상에서 창조된 첫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으로 옮겨간 것은 에덴동산의
주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곧 첫사람 아담이 그리스도라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창세기 2장 21-22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첫사람 아담이 잠들었다는 말은 육체로는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리스도의 자리로 돌아감을
상징한다. 그리고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가 나타난 것이다. 이는
이후 그리스도 안에서 새창조를 예고하고 있다. 아담의 갈빗대를 수단으로 한다. 죄인된 인간이라는 피조물이 등장하는 것이다.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자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
아담이 930세를 살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 계산되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남자 아담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에덴동산의 하나님의 시간을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은 카이로스이나 인간들의 시간은 크로노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상의 창조의 역사를 대략 6000여년으로 계산하는 오류를 범하는데, 에덴동산의
의미와 첫사람 아담과 남자 아담과의 관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빛이 차단되고, 천사의 옷을 빼앗겨 버림으로 범죄한 영들은 어두운 영으로만 남게 되었다. 베드로전서 3장 18-20절에서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이 땅에 갇힌 범죄한 영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사탄을 따라간 불순종한 영들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영의 몸을 입고, 어둠의 영들에게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말씀하신다. 노아의
날에 심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후손(씨의 약속인 예수 그리스도)을 기다리지 않은 자들이다. 이 세상에서 어둠의 영들이나
육체 속의 불순종하는 자들은 다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어둠의 존재들은 여전히 불순종하여
육체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육체 속에 들어간 자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고 싶은 것이다. 결국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심판 때 둘째 사망에 처해질 것이다.
하나님은 흑암이 있는 셋째하늘에
물질의 기초가 되는 빛을 창조하여 보내주시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 물로 나뉘게 하고
궁창 아래 물(흙탕물)로 땅을 만드시고 바다를 만드셨다. 그리고 모든 동식물을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어두운
영을 가두기 위해 흙으로 빚은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입김을 흙에
불어 넣어서 첫사람 아담이 되었는바,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영어성경(kjv)은 『Who is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 the firstborn of
every creature:』헬라어 성경은 ὅς ἐστιν εἰκὼν τοῦ θεοῦ τοῦ ἀοράτου, πρωτότοκος(프로토토코스:첫번째 태어난) πάσης κτίσεως(크리세오스:창조된),죄의 몸을 만들어서 악한 천사의 영을 가두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물질세계에 있던 첫사람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었다는 말은 첫사람 아담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요한복음 1장 15절에서『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먼저 계심은 헬라어로
『프로토스(먼저) 무(나의) 엔(존재했다)』, 여기서 프로토스는 질서적으로 앞선 것을 의미한다. 나보다 먼저 된 자라는 말은 아르케(우두머리)라는 말이다. 그 분은 모든 피조물보다 앞서 존재했던 분이라는
말이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흔적은 헬라어로 스티그마타(στίγματα)로서 흔적들이다. 흔적들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십자가의
죽음은 첫사람 아담을 상징하고 부활은 마지막 아담을 상징한다. 첫사람 아담은 죽어야 할 존재임을
나타내고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이 첫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분리되어 남자인 아담과 여자인 하와로 나뉘어지게 되는데, 이 두 사람은
범죄한 천사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으로부터 세상으로 내 보낸 사람은 첫사람
아담(사람)이 아니라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인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아다마(사람)으로 번역되지만, 남자 아담은 남성(이쉬 male)인 것이다. 영어로
둘다 man으로 표현하다 보니 혼란을 준다.
창세기 3장에서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 옛뱀(사탄), 아담, 하와가
등장한다. 하나님이 다시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를 세상에 내 보낸 것은 천사들을 첫사람 아담으로
부터 분리된 육체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육일 창조를 하시고 일곱째 날에
창세기 2장 1절에서『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재편되었다』 라는 의미다. 땅의 군대는 셋째하늘의 악한 천사들을
육체를 입게 했다는 말이다.
에덴동산에서 물질세계로 바뀐 후에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는 육체를 생산하기 시작하고 대를 이어서 인구는 늘어났다. 말하자면 흑암으로
바뀐 어두운 영을 하나님이 육체 속에 가두어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모든 악한 영들을
넣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육체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육체 속으로 들어간 영들은 세상에 살다가 죽고, 영들은
음부에 대기하게 된다. 육체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기하는 어두운 영들은 하나님의 빛(그리스도)이 없는 인간들의 육체 속에 들어가려고 한다. 왜냐하면 어두운 영들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기 때가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8장 28-29절에서『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프로 카이로 προ καιρου)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카이로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이다. 물질세계의 때는 크로노스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는 심판의 때도 생각할 수 있지만, 어두운
영들은 육체 속에 갇혀야만 하는 것이다.
모든 어두운 영들이 육체 속에
들어갔다가 인간이 되어서 죽고 음부에 들어가면 이 물질세계는 끝이 나고 하나님이 심판을 하여 셋째하늘에 복귀하거나 아니면 둘째 사망에 처해지는
것이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자신의 빛을
막으시므로 흑암과도 같은 곳으로 바뀌었다. 세상으로 말하자면 감옥과 같은 곳이다. 천사들이 육체에 갇히므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감옥은
세상에 있으면서 세상과 분리 된 것과 같은 것이다. 분리의 수단이 감옥은 철창이지만 인간은
육체이다. 그런데, 이 감옥과 같은 땅에서
어두운 영을 지배하는 자는 여전히 사탄이다. 하나님이 사탄을 사용하고 계신다. 에덴동산이 회복될 때까지 사탄을 그곳의 지배자로 허용하셨다. 누가복음 4장 6-7절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의 말이다.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사탄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천사들을 유혹한 자인데, 그 의도가 그대로 나타난다.
다시, 인간이 셋째하늘(에덴동산)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육체가 죽고 영이 영의 몸을 입고 돌아가야 하는데 육체를 입은 인간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현재 셋째하늘을 맛보고 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생명의 빛을 비춰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성도의
심령 속으로 호 로고스(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임재하셔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것이다. 즉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언젠가 육체를 벗으면, 셋째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을 성도는
널리 알려야만 한다.
(영이 갇혀있음을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계시)
(1) 하나님이 율법을 통하여 깨닫게 해 주심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함이라』죄 아래 갇혀있다고 믿는 자만 약속을 받을 수 있다.
죄 아래 갇혀있는
것은 마치 이 세상에서 죄로 인해서 감옥에 갇혀있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갇혀있는 자는
무조건 감옥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감옥의 규칙이 이 세상에서의 율법과 같은 의미다. 그 고된 규칙을 통해서 죄를 깨닫고, 바깥 세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유일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죽어서 나가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면이 있다면 살아있을 때, 자유인이 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되는 길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2) 하나님이 선지자들의 말을 통하여 깨닫게 해 주심
이사야서 42장 7절은『인간들이 다 옥에 갇힌 자』라고 표현하는데,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영이 갇혀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예수님이 갇힌 영을 구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3)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해 주심
예수님은 누가복음 4장 17-19절에서 바로 이사야서 42장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예수님은『흑암에 갇힌 자를 구하기
위해서 오셨다』라고 표현했다. 성경(이사야서 42장 7절)은『인간들이
다 옥에 갇힌 자』라고 표현하는데, 사람들은『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어떤 특별한 장소에 가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범죄한 천사들의 영은 인간의 몸 속에 갇혔고, 그리스도께서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흑암 가운데 있는 이 세상에 온 것이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말하는 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에서 혼돈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흑암과 유다서 1장에서 말하는 흑암은 동의어로서 헬라어로 스코토스(σκότος)라는 말이다.
(4) 예수님의 제자들이 작성한 서신을 통하여 깨닫게 해 주심
유다서 1장 6절과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범죄한 천사들을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유다서 1장 6절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처소가 고린도후서 5장 1절의 하나님이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이다. 그
집을 천사가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집을 올바르게 입고 있는 영이 바로 천사이다. 그런데 유다서에서 천사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났다고 하고 있다.
범죄한 천사가 입고 있던 처소를 버리고
하나님의 처소를 떠난 것이다. 그 집은 하나님이 회수하는 것이며 떠난 천사는 하나님의 처소를
벗어나 벌거벗은 상태가 된 것이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범죄한 천사와 흙으로 된 인간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인간 속의 영은 흙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흙은
가두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시편142편 7절에서는『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베드로전서 3장 18-21절에서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옥에 있는 영들은 육체 속에 갇힌
악한 천사의 영들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으며, 모든 갇힌 영들에게 메시지를 주시는 것이다. 『너희들은
모두 노아 시대에 살았더라면 물에서 죽어야 할 그런 자들이며, 당시에는 8명만 구원받았지만, 이제 십자가에서 죽은 나와
연합하여 죽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성도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하여
죽는 것이 바로 세례의식이다. 세례는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육으로는
죽고, 영으로는 살아나는 것이며, 양심의
회복이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모든 인간은 물에서 죽어야 할 존재들인데,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
창세기 3장 21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가죽옷은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직접 그리스도가 되어 흙속에 들어가서 만들어진 육체(가죽:살)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 육체를 자손 대대로 물려주는 것이다. 그
육체에는 사탄의 표시가 있다.
두번째의 가죽옷의
의미는 동물의 희생제사를 의미한다. 동물을 죽여서 희생제사를 드리면(회개하여 죄에 대해서 죽으면), 사탄의 지배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인의 후손을 약속하셨다. 희생제사를
통해서 여인의 후손(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길을 약속하신 것이다. 희생제사와
같이 죽은 자가 되어서 돌아오라는 것이다.
죽음을 의미한
것이 바로 3장 24절에 그룹들(천사)과 두루도는 불칼(성령)이다. 불칼을 맞고 죽어서 에덴동산(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다. 희생제사를
통해서 자신도 희생된 동물과 같이 죽으면, 약속의 씨가 육체 속의 영을 살려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첫째, 아담을 통해서 자손들에게 여인의
후손에 대한 약속과 희생제사를 구두로 전하였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첫 자식인 가인이 둘째 아들인 아벨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인은 자신이 생산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로 드렸으며, 아벨은 하나님께 죽음의 희생제사를 드린 것이다.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희생제사를 드려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노아의 시대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아담으로부터
노아에 이르기 까지 여인의 후손에 대한 구전으로 이어지던 약속이 모든 사람들의 기억 밖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다만
노아와 그의 가족 7명만 그 약속을 믿고 계속 희생제사를 드린 것이다.
둘째, 노아 이후 세명(셈 함 야벳)의 후손들이 많아졌으나, 사람들은
자기의 의를 세우기 위해 바벨탑을 짓고, 하나님을 대적했으며, 더욱
하나님을 잊어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해서 언약을 하시고, 할례와
희생제사를 통해서 구원을 약속하셨다. 희생제사는 대속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할례는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 언약은 아브라함에
이어서 이삭, 야곱까지 이어갔으나, 야곱의
후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감으로 바로(사탄)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할례의 의미를 다 잊어버리게 된다. 하나님이
모세를 택하여 그들을 출애굽하게 하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다.
셋째,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으며, 그 율법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셨다. 백성들이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이 죄를 묻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제도를 통해서 죄를 면하게 하셨는데, 결국 희생제사를 통해서 율법 속에서 감추어진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셨으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러가지 징계의 방법을 동원하고,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넷째, 그리스도께서 직접 이스라엘 땅에
육체를 입고 다시 태어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을 하지만, 유대인들은 대부분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며, 신성모독죄로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대속물로 죽으셨다. 그와 연합되는 자는 모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로 인정하시고 구원하겠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죽음의 표현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함께 연합되어 죽은 것을 믿으면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다는 것이다.이방인 수가 차기까지 하나님이 기다리신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 거듭난 자가 구원을 얻는
것을 먼저된 자라고 말을 한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성도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는 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은 세례와 같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세례의 의미는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서 6장 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첫사람 아담으로 부터 온 죄의 몸은
예수와 함께 죽고 마지막 아담과 함께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신령한 몸으로 번역한 것의 헬라어는 소마 프뉴마티콘(영의
몸)이다. 영의 몸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의 몸이며
세례받은 자도 이렇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다만 여전히 세상에 육체로 살고있어서 육의 눈으로
세상을 보므로 영의 몸이 작동되지 않는다.
세례는 물에 잠기거나 물을 머리에
적시는 의식이지만 마음으로 자신이 하나님께 대해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악한 자라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이다. 이게 마음의 할례이다. 구약시대 죄인들은 동물을
희생시켜 그 피를 제단에 뿌려 하나님으로 부터 죄를 용서받았다. 그때 죽은 동물이 바로 죄인
자신임을 깨달았어야 하는데 죄인들은 죄만 용서받으려 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말한다. 1장 10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오늘날도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만 물에서
죽는 의미를 모른다면 즉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영적 제사의 의미를 모른다면 죽은 것이 아닌 것이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배는 의식이나 절차가 아니라 육적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 도중에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라고 말한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고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예배도 역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성령세례를 받고 사도적 사명을 이루어 나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그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신다. 성도의
심령 가운데, 호 로고스께서 들어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성전을 세우고, 그 성전에서 호 로고스께서 성도와 대화를 나누시고, 복음을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지금은
네번째인 은혜의 복음의 시대인 것이다.
다섯째, 마지막 때는 멸망의 아들(적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그리스도인들을 엄청나게 핍박할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은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시고, 남는 교회 신도들은 예수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당하던지, 예수를
배반하던지 두가지의 선택만 남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야곱의 환란인 것이다. 이 구원은 먼저된 자가 아니라, 나중된 자를 의미한다. 이방인에 반대되는 개념인 이스라엘은 교회 안에서 거듭나지 못한 자를 의미한다.
(셋째하늘의 회복)
첫째, 땅의 회복이 이루어진다
에덴동산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 살고 있는 이 땅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빛을 차단하므로 물질 세계의 세상이 되었지만, 하나님이 다시 의로운 빛을 보내면, 물질세계는
사라지고 에덴동산이 바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켜주셨듯이
영적으로 죽은 이 땅을 에덴동산으로 부활시켜주실 것이다. 이사야 51장 3절에서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부활은 이전의 몸은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이 땅은 홀연히
사라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내려온다는 것이다. 사막이 서서히 에덴같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가 서서히 동산과 같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이다.
땅 뿐만 아니라 사람, 나아가 동식물까지도 새로운 것으로 바뀌게 된다. 고린도전서 15장 40-42절에서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전의 것은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죽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불에 의해서
소멸되는 것이고, 사라지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3장 7-8절에서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요한계시록 21장 1-2절에서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회복된 에덴동산에서의 모습을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이사야 65장 25절에서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로 인해 에덴동산을
물질세계로 만들었지만, 그리스도의 예정이 완전히 이루어지면 다시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로 원상회복될
것이다. 물질세계는 감추어진 에덴동산의 짧은 기간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보기에는 수천년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몇날과 같은 것이다.
둘째, 주권의 회복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천사장 헬렐이 하나님나라에서
범죄함으로 물질세계를 만들어 쫒아버렸다. 이것이 1차
심판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물질세계를 일정기간 지배하도록 허용하신 것이다. 사탄은 공중 권세를 잡아 사람들을 미혹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서『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탄은 공중 권세에서 이 땅으로 쫒겨 내려왔다. 요한복음 16장 11절에서『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마지막 백보좌 심판 때까지는 여전히 사탄이 세상의 임금 노릇을 하는 것이다. 심판
때가 되면, 천년간 무저갱에 가두었다가 잠깐 풀어준 다음 하나님께서 백보좌 심판을 하실 것이다. 그리고 사탄에게 허용해 준 권세를 다 회수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돌려주실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 아들이 되어 돌아온다(돌아오는 탕자)
원래 아담과 하와는 하나였다. 아담이 하와가 분리되기 전에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사람이었다. 첫사람
아담인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주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스스로 육체가 되어 사람들에게
죄의 몸을 나누어주게 된다. 그리고 첫사람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남자인 아담과 여자인
하와가 등장한다. 남자가 된 아담은 죄를 짊어지고 이 땅에 들어온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그리고 여자는 그리스도를 떠나 스스로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려는 하나님을 떠난 영들이다. 이 말은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도 언급된다.『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여기에서 사람은 남자를 의미한다. 번역을 남자로 했어야 했다. 교회는 아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남편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에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성도가 바로 그리스도의
아내라는 표현이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다. 오실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담 안에서 이 세상에 모든 영들이 들어오고, 마지막 아담 안에서 택한 영들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때, 영들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도바울이『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비밀이 크다는 것은 엄청난 비밀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교회다니는 사람들에게 무슨 큰 비밀이겠는가? 비밀이 아니라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에는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천사들 사이에 있었던 큰
비밀을 의미한다. 천사들은 항상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존재다. 부부의 삶은 바로 하나님과 영들과의 관계로 설명된다. 하나님은
부부의 관계를 통해서『너희들은 다 나를 떠난 존재임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구원은 하나님과 영으로 하나가 되어야만 이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의 영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7장 11절에서『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그래서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육의 몸(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골로새서 3장 3절에서『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인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죄를 회개하고 에덴동산의
회복을 위해 수고한 자를 하나님은 상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은 셋째 하늘로, 하나님의 아들된 자들은 셋째 하늘의 자녀들을 다스리는 지도자로의 권세를 얻거나 둘째 하늘로 보내질
것이다. 십사만 사천의 군사로 영광의 월계관을 받을 것이다. 셋째
하늘에 보내지는 자녀들은 다시 천사의 옷을 입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 20장 35-36절에서 육체를 벗은 자들은 천사로
돌아간다고 말을 한다.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마지막 때는 그리스도의 예정이 끝나는
시점이 된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의인과 악인이 나뉘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의인으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악인으로 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다시 셋째 하늘로 복귀하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둘째 사망에 처해질 것이다.
정리하면, 결국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은 첫사람 아담인 그리스도와 함께 물질세계에 들어와 살다가 다시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51절『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장 13절에서『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여기서 인자로 번역된 말의 헬라어를 보면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그 아들 그 사람)이다. 그
아들과 그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이다. 하늘에서 그리스도가 내려왔다는 말이다. 이
말은 첫사람 아담이기도 하고 마지막 아담이기도 하다. 번역을 다시 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곧 그 아들 그 사람(그리스도)이며 하늘에서 내려옴이 없었다면 올라감도 없었을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첫사람 아담으로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이 되셔서 죄의 몸을 영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다시
그리스도가 마지막 아담으로 내려와서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요한복음 5장 27절에서『또 인자(안드로푸ἀνθρώπου)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크리신κρίσιν) 권한(엨수시안 ἐξουσίαν)을 주셨느니라』인자로
번역된 안드로푸는 아다마로서 첫사람 아담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죽어야 할 첫사람 아담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아담은 이제 판단하는 권세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2절『그러면
너희는 인자(안드로푸)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안드로푸는 히브리어 아다마와 같은 단어이다. 아다마는 첫사람 아담을 의미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을 표현한다. 마지막 아담은 하늘로부터
온 자라는 말이다. 이 말은 첫사람 아담도 하늘로부터 온 자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들도 하늘로부터 온 자들이라는 것이다. 인자라고
표현된 안드로폰은 원래 하늘에서 내려왔으므로 하늘로 올라가셨다. 결국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성도가 인자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첫사람 아담도 그리스도였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자들은 범죄한 영들로서 육체 속에 갇혀 영적으로 죽어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육에 갇히므로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영적으로 살리고 싶어하신다.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토 프뉴마)이니 육(사륵스)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프뉴마)이요 생명이라』프뉴마 앞에 관사가 있으면 성령이고, 없으면 영이다. 성령이 죽어있던 영을 살리는 것이다. 사륵스(종교심)는 영을
살릴 수 없다는 말이다. 종교심은 내가 신을 믿는 그런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는 죽었던 영을 못 살리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영이 살아난다.
요한복음 11장 49-52절『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이런 예언을 한 것은
자신의 생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 어떤 어떤 능력에 의해서 말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은 온 인류를 위해서 죽는 것임을 미리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흩어진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다. 흩어진 자녀는 표면적으로는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떠나 이 세상에 온 자들(천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첫사람 아담을 통해 세상에 와서 흩어졌다가 다시 마지막 아담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로마서 5장 12-14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그리스도는 죄가 없으면서 죄있는 모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 마지막 아담의 모형이 되는 첫사람 아담도 죄가 없는 그리스도이셨으나, 범죄한 천사들로 인해서 죄있는 모양으로 육체 속으로 들어왔으며,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첫사람 아담의 몸 속으로 들어오는 모든 자는 육체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자기의 죄를 들고 세상에 들어온 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로마서 5장 17-19절 『 한 사람의 범죄(토 투 헤노스 파랖토마티 τῷ
τοῦ ἑνὸς παραπτώματι
)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토 투 헤노스 파랖토마티는 하나의 범죄이다. 한 사람의 범죄라고 번역하므로 첫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식되나, 하나의
범죄는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먹은 그 하나의 범죄인 것이다. 그 범죄는 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죽는 모든 사람은 첫사람 아담 안에
있는 자이고, 새생명을 얻은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생령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ψυχὴν(프슈켄)ζῶσαν(조산)으로서 살아있는 혼(생명체)이라는
말이다. 첫사람 아담은 생명체인데 죄의 몸을 나누어 주었다. 즉 첫사람 아담으로 부터 남자 아담과 여자 하와로 분리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죄의 몸이 죽고 하늘로 부터 새로운 생명(영의 몸)으로 태어남을 의미한다.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의 몸이 죽은 것을 믿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9절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표면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올라가셨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내려갔음을 전제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면상으로는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분과 올라가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해준다. 4장 10절에서『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창세기 2장 1절에서 만물은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범죄한 천사들)를 의미하는데, 그리스도로 인해서 범죄한 천사의
영이 구원받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신 그리스도는 첫사람 아담으로서 죄의 몸을 영들에게 주기 위해, 마지막
아담으로서 죄의 몸에 대해서 죽고 구원받는 영들에게 영의 몸을 주기 위해 내려오신 것이다.
히브리서 1장 6절에서 한글개역 개정은『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그런데, 헬라어를 보면 ὅταν δὲ πάλιν εἰσαγάγῃ τὸν πρωτότοκον εἰς τὴν οἰκουμένην, λέγει·καὶ προσκυνησάτωσαν αὐτῷ πάντες ἄγγελοι θεοῦ.밑줄친 부분의 번역이 잘못되었다.『그분께서 그 처음 나신 분을
다시 세상에 들어오게 하실 때에』그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그 처음나신 분은 첫사람 아담(그리스도)이고, 세상에
다시 들어오는 자는 마지막 아담(그리스도)인 것이다.
요한복음 4장 22절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는
것을 예배한다는 말은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이다. 영과 진리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려왔다. 이 메시아 사상은 선지자들을 통해
전해졌으며, 그 이전으로 올라가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씨의 약속이며, 더 이전에는 여인의 후손에 대한 약속이다. 그리고 더 이전으로 돌아가면
하나님이 첫사람 아담을 만드신 일이다. 그 첫사람 아담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형상이며 마지막 아담의 표상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이브리이다. 이 단어는 강을 건너온 자라는 의미이다.
강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그래서 다시 강을 건너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구원은 첫사람 아담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아담으로 끝나는 것을 보여준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영어성경(kjv)은 『Who is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 the firstborn of every creature:』
헬라어 성경은 ὅς ἐστιν εἰκὼν τοῦ θεοῦ τοῦ ἀοράτου, πρωτότοκος(프로토토코스:첫번째 태어난) πάσης κτίσεως(크리세오스:창조된). 한글 개역개정은 먼저 나신 분으로
되어있으나, 헬라어 성경과 영어 성경은 처음 태어난 자로 되어있다.
요한복음 1장 15절에서『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먼저 계심은
헬라어로 『프로토스(먼저) 무(나의) 엔(존재했다)』, 여기서 프로토스는 질서적으로 앞선 것을 의미한다. 나보다 먼저 된 자라는 말은 아르케(우두머리)라는 말이다. 그 분은 모든 피조물보다 앞서 존재했던 분이라는
말이다.
히브리서
7장 5-6절에서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제사장은 두 종류로 나뉜다.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
계통의 직분을 가진 자와 멜기세덱의 계통이다. 레위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셋째 아들이다. 레위인이 하나님의 것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레위지파를 택하여 이스라엘 중 처음 난 자를 대신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민수기 3장 1-13절에서
하나님이 처음 난 자를 거룩히 구별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출애굽 당시 유월절의 장자의 죽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땅에서 처음 난 자는 아담이다. 그러므로 첫사람
아담은 엄밀히 하나님께 바쳐진 제사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세상에 육체(첫사람 아담)로 오셔서 인간들에게 죄의 몸을 나누어주고, 제사장으로서 희생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은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로 하여금 장차 오실 씨의 약속을 기다린 것이다. 두번째 제사장은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르는 제사장인데, 바로 마지막 아담(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3. 심령 속의 셋째하늘
심령 속의 셋째하늘이
세워지는 것도 순서가 있다. 먼저 하나님께 대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임을
인식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죽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를 영적으로 부활시켜 주신다. 육의
몸은 죽고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령 속에서 성전이 세워지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의 심령을 통과하여 승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의 심령 속으로 다시 강림(공중재림)하신다. 그리하여 호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과 심령
속에서 함께 영적으로 지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셋째하늘이 세워지는 것이다.
1) 하나님께 대한 회개
회개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대한 회개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상태에서, 『하나님 없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일을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없으면 모두 악한 존재가 된다』라는 말이다. 즉 율법을『스스로 지켜서 의로운 자가 되어보겠다』라는 생각을 가진 자는 『하나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는데, 스스로 율법을 지켰으니 의로운 자가 된다』라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죄라는 것이다. 『스스로 의인될 수 있다』고 계속 우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회개하라』고 외친 것이다. 율법으로는 의인이 되지 않으므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말씀이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떠나『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나, 하나님없이 율법의 기준으로『의를 이루어 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죄인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으므로, 스스로
하지 말고『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이 바로『회개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위하여 세상죄를
다 사해주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짊어지고 가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 26절에서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텐 에피그노신
테스 알레데이아스)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개역개정의 번역은 오류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Ἑκουσίως γὰρ ἁμαρτανόντων ἡμῶν μετὰ τὸ λαβεῖν τὴν ἐπίγνωσιν τῆς ἀληθείας, οὐκέτι περὶ ἁμαρτιῶν ἀπολείπεται θυσία,』인데, 다시 번역해 보면『우리가 진리의 하나됨을 받은 뒤에는 죄들에 대해서 희생제물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고』이다.
텐
에피그노신 테스 알레데이아스는 진리의 하나됨이다. 하나됨이란 아는 자식이 아니라 히브리어로 야다와 같은
개념으로 부부가 서로 아는 것이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진리의 하나됨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죄가 무엇이며, 죄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죽고, 속량되어 죄의 그물에서 벗어나고,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서 성령세례를 받고, 성도의 심령 속에
성소가 임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후에는 속죄의 제사가 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는 두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는 성도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여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자가,
세상에 살면서, 세상죄를 짓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예수의 피를 동원하여 죄를 용서받는 그런 것을 하지 말고, 처음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세상죄는 사하심을 받는다. 두번째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했는데, 예수를 배반하고 떠나가는 자, 또는 교역자들 중에 혼합주의 종교(율법주의, 영지주의, 인본주의)에 빠져 복음을 변질시켜,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은 더 이상 십자가가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원래 이들은 말로만 예수믿고, 거듭났다고
말을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은 자가 되어야 한다.
대부분 인간은 자신의 존재적 정체성을 생각할
때, 육으로 비롯된 혼을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육은 흙으로 가고, 영은 하나님 나라로 돌아간다.
따라서 자신의 존재적 정체성은 영인 것이다. 인간은 육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 육과 영이
결합되므로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 것이다. 따라서 영은 인간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결합체의
한 부분이 된다. 사람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전도서 12장 7절『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육은 흙으로부터 왔으므로 땅으로 돌아간다.
창세기 1장 26-27절『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자는 첫사람 아담이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영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떠난 영은 죽어있다는 것이다. 영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함을 말해주신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다. 첫사람 아담은 육의 몸으로 모든 영들을 세상에 데려와 각자의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죄로 인하여, 죄인들이 되었으며, 마지막
아담은 영의 몸으로 택한 자의 영들을 데려가 의인들이 되게 하셨다. 첫사람 아담(죄인)과 마지막 사람 아담(의인) 사이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육체적
죽음이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 아담의 죽음은 육체적 죽음과 동시에 죄의 죽음이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의 죽음에 연합되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도 죄의 죽음이 발생한다.
할례받는 것은 죽은 자임과 동시에 씨의 약속을 받는 것이다. 할례는
태어난지 팔일 만에 받는데, 팔은 안식(칠)이 다 마쳐진 자가 팔이 되는 것이다. 팔은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새하늘과 새땅을 상징한다. 할례는
이 땅에서는 죽고, 새하늘과 새땅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약속이 있는 것이다. 육(6)은 죽음을 나타내고, 칠(7)은 안식을 나타내며, 팔(8)은 부활을 상징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온 자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자가 된다. 그리스도의
할례는 육적 몸을 벗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할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이것을 세례의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3) 성령이 역사하신다.
요한복음 7장 37-39절『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호 피스튜온 에이스 에메)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명절 끝날 쯤에는 유대인들은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모세가 반석을 깨뜨려 물을 내게 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는데, 물을 떠서 성전 제단에 붓는 의식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에게 와서 물(성령)을 마시라는 것이다.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라고 말을 했다. 배는 몸의 중심을
의미한다. 배에 심령 속의 성전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심령은
영의 깊은 곳을 의미한다. 영의 깊은 곳에 성령의 전이 만들어지고 그래서 그 성령으로부터 생수(말씀)가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호
피스튜온 에이스 에메는『내 안에
들어와서 믿는 자는』이라는 의미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예수와 연합되는 삶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령이 주어지고 성령 충만을 받게 된다. 성령에 대해서 로마서 8장 2절에서『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했다. 성령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성도가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성령을 받고 충만해지는 것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심령 속의 성전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심령 속에 파루시안(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휘포모네(임재
속에 머무는)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성령의 은사가 되는 것이다.
왜 예수님이 성령받을
것을 오순절에 말씀하시지 않고, 명절 끝날인 초막절에 말씀하셨는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성령이 임하였다. 그 성령은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의 위에 임하셨다. 그래서 능력을
나타냈다. 능력은 헬라어『두미나스』(영어 다이나마이트)로 표현되었다. 성령이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 위에 임하면 은사가 되고
능력이 된다. 오순절은 맥추절이라고 해서 성령이 위에 임하여 추수하는 것을 나타낸다.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 위에 성령이 임하시고, 능력을 나타내어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하여 많은 사람들을 추수하게 된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으면 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자는 예수와 함께 죽고 하늘로 부터
태어나는 자를 의미한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는『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하늘로부터
태어난 자 안에 성령이 들어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영어로 authority다.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이런 권세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요한복음 3-7장에서는『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자는 목마르지 않는 샘이 솟는다』고 말한다. 성령이 하늘로 부터 태어나는 자의 안으로 역사하는 것은 바로 초막절과 관계가 깊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한복음 7장
37-39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순절과 초막절을
비로 표현하는데, 이른 비(초막절), 늦은 비(오순절)를
말한다. 이른 비는 구원의 성령, 늦은 비는 능력의 성령이다. 우리의 구원은『늦은 비』가 아니라,『이른 비』다. 성령이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의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권세를 받는다. 그러나 늦은 비의 성령은 증인이 되시는 권능을 나타낸다. 권능은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의 위에 역사하신다. 그래서 자녀에서 아들이 되는 권세를 갖는다.
초막절은 연말(7월 1일)에 지키는데, 이것이 구원의 성령을 나타내는 것이다. 솔로몬 왕 때 초막절이 끝나는
날에 성전에 물을 부었다. 일종의 기우제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7장 37-39절에서 말씀하시는 그 때, 사람들이 물을 길어서 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목마르지
않은 생수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구원(권세)의 성령도 모른채, 능력의 성령 만을 말하는 사람들은 가짜 복음이다. 우리의 구원은 초막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신『이른 비』에 있는 것이다. 이게
생수가 된다. 이른 비는 우리의 배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이른 비와 늦은 비
사이에 있는 물에 대해서 선지자들이 많이 이야기했다. 출애굽기(17장) 맛사(하나님을 시험한다는 뜻: 므리바
라는 이름도 있음)에서 모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었으며, 민수기(21장) 므리바(하나님과
다투었다는 뜻)에서는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내라고 말했다. 그런데
모세는『패역한 자여 너희에게 물을 주랴』라고 말하면서, 반석을 두번 지팡이로 쳤다. 그 때, 여호와께서 진노하셨다. 물은
주셨지만, 모세는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하늘로부터
나지 않으면서 성령을 구하는 자들은 맛사에서 물을 달라고 하는 자들과 같은 것이다. 오직 회개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통해서 구원의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삶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
(영적 부활)
요한복음 5장 21절『아버지께서 죽은 자들(네크루스νεκροὺς)을 일으켜(에게이레이 ἐγείρει)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조오포이에이 ζῳοποιεῖ)』 부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나, 육체적으로 죽고 난 뒤에 임하는 부활이 아니라 현재적 영적인 부활을 의미한다. 네크루스(νεκροὺς)는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성령의 능력으로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바로 영적으로 사는 것이다.
조오포이에이(ζῳοποιεῖ)는 영적으로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부활의 이 역할을 아들이 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5장 24-25절『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톤 로곤
무
τὸν
λόγον
μου)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크리신κρίσιν)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다나투 θανάτου)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네크로이 νεκροὶ)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테스 포네스 τῆς
φωνῆς)을 들을(아쿠산테스ἀκούσαντες)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뉜νῦν)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톤 로곤 무(τὸν
λόγον
μου) 라는 말은 나(성자)와
톤 로곤((τὸν
λόγον말씀이신 그리스도)와 동격을 의미한다. 나 라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이다. 즉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음성을
듣고 믿는 것을 동격으로 말한다. 크리신(κρίσιν)은 판단한다는 것이다. 다나투(θανάτου)는 죄 가운데서 죽음을
의미한다. 죄 가운데서 죽는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네크로이(νεκροὶ)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활은 육이 죽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죽은 후에 부활을 믿는다면, 2천년 전의 예수를 믿는 종교행위를
하는 것이다. 지금 심령 속에 임재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음성을 듣고 믿는 것이다. 뉜(νῦν)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육의 몸을 벗고 영의 몸으로 갈아입는다)
혼(프슈케)을 한글 개역개정 에는 목숨,
영의 몸, 영혼, 혼으로 혼란스럽게 번역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혼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것이다. 혼은
무엇인가?
창세기 2장 7절에서 최초로 혼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생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창세기 2장 7절『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임)이 되니라.』네페쉬는 혼(헬라어 푸슈케), 하임은
살아있는 이라는 의미다.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kjv)
고린도전서 15장 45절『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프쉬겐 조산)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프쉬겐 조산은 살아있는 혼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6절『그러나 먼저는 신령(프뉴마티콘)한 사람이 아니요 육(프쉬케)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프뉴마티콘) 사람이니라』 프뉴마티콘은
신령한이 아니라 영적인 이라는 의미다. 프쉬케는 혼이다. 인간은 흙(육체)와 영이 결합된 존재인데, 이 두가지가 결합되므로 살아있는 혼이 되었다는
것이다. 혼이 있어야 생명이 되고, 혼이 없으면 죽는 것이다.
목숨이라고
번역된 것이 이러한 이유인 것이다. 고린도후서 12장 15절『내가 너희 영혼(τῶν ψυχῶν)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톤 프쉬콘은 혼을 의미한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8절에서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ψυχάς)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프슈카스(ψυχάς)는 혼이다. 요한1서 3장 16절에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τὴν ψυχὴν)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 (τὰς ψυχὰς)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목숨으로
번역된 텐 프슈켄은 혼이다.
영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면 살아나고, 관계가 끊어지면 영은 죽은 것이 된다. 따라서 혼도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 세상에 살고있는
것은 영이 하나님 나라를 떠나 물질세계에 갇힌 것과 같은 것이다. 감옥(집)이 바로 육체(영의
집:소마)를 의미하며, 혼은
영이 입는 옷과 같은 것이다. 영은 옷을 입어야만 생명체가 된다. 하늘의
생명체이던 물질세계의 생명체이던 혼을 입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육체 속의 영이 입고
있는 혼이라는 옷은 죄악에 물들어서 영을 질식하는 옷이다. 그래서 옷을 의의 옷으로 갈아입으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는 의미는 혼을 벗고 의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오는 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옛사람인 더렵혀진 옷(혼)을 벗고 새사람의 옷으로 갈아입으라는 것이다. 새사람의 옷을 그리스도의
옷으로도 표현된다.
옛사람의
옷은 반드시 벗어야만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ψυχῆς)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프슈케스는 혼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옷이
바로 영의 몸이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프쉬키콘)으로 심고 신령한 몸(소마
프뉴마티콘)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프쉬키콘)이 있은즉 또 영의 몸(소마 프뉴마티콘)도 있느니라』프쉬키콘은 혼이다. 소마 프뉴마티콘은 영의 몸이다. 예수님도 부활하신 이후에 부모로부터 받은 육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영의 몸을 입으신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난 성도도 이렇게 영의 몸을 입게 된다. 다만 육체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신령한 몸으로 작동되지 않을 뿐이다.
하늘로부터
받은 영의 몸인 혼은 영을 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빛을 받는다. 성도는 혼을 보전하기 위해 힘쓰라고 성경은 말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τὸ πνεῦμα)과 혼(ἡ ψυχὴ)과 몸(τὸ σῶμα)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토
프뉴마는 영, 헤 프슈케는 혼, 토 소마는 육으로 번역된다.
구원은 영과
혼의 구원이다. 영의 몸이 영과 결합될 때, 영혼이 되어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영도 구원받고 혼도 구원받는 것이다. 성경에는
다양하게 혼의 구원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다. 히브리서 10장 39절에서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ψυχῆς)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영혼으로 번역된
프슈케스는 혼이다. 히브리서 13장 17절에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τῶν ψυχῶν)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영혼으로 번역된 톤 프슈콘은 혼이다. 야고보서 1장 21절에서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τὰς ψυχὰς)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영혼으로 번역된 타스 프슈카스는 혼이다. 야고보서 5장 20절에서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ψυχὴν)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프슈켄은 혼이다. 베드로전서 1장 9절에서
『믿음의 결국 곧 영혼(ψυχῶν)의 구원을 받음이라』프슈콘은 혼이다.
하늘로부터 받은 영의 몸인 혼을 지키기 위해서는 싸워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서『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τῆς ψυχῆς)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혼을 타락시키는 자들이 있어서 주의
하라고 한다. 베드로후서 2장 14절에서『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ψυχὰς)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프슈카스(ψυχὰς)는 혼이다.
테스
프슈케스는 혼이다. 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의탁하라는 말이다. 베드로전서 2장 25절에서『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τῶν ψυχῶν)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영혼으로 번역된 톤 프슈콘은 혼이다. 베드로전서
4장 19절에서『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τὰς ψυχὰς)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타스 프슈카스는 혼이다. 요한3서 1장 2절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ἡ ψυχή)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헤 프슈켄은 혼이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서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τὰς ψυχὰς)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영혼으로
번역된 타스 프슈카스는 혼이다.
(옛사람의 혼이 영의 몸으로 홀연히 변화)
심령 속에 셋째하늘이 들어왔다는 말은 영적
생명이 들어왔다는 말이다. 죽었던 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난 것이다.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것이다. 아가페의 사랑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것을 의미한다. 죽은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을 가둔 육적 몸이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그들이 새피조물이 되는 순간이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서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후 우라노이)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파렐류손타이) 물질(스토이케이아)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휴레데세타이)』 주의 날은 마지막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마음 속에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주께서 성도의 심령 속에 들어오는 날이 어떤 사람은 빨리
어떤 사람은 늦게 찾아오신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함께 죽은 자의
심령으로 들어와 새창조가 일어난다. 후 우라노이(οἱ οὐρανοὶ)는 마음 속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파렐류손타이(παρελεύσονται)는 파라(옆에서) 류손타이(오다)의 합성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임재하는 것이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간다고 번역했는데, 아마도 주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번역한 것으로 보여진다.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는 것은 육적 몸(옛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토이케이아(στοιχεῖα)는 원소(물질)라는 의미다. 휴레데세타이(εὑρεθήσεται)는 드러나다 라는 의미다.
현재적으로 살고 있는 성도들은 육적 몸(혼)이 영의 몸으로 변화되어, 호
로고스를 영접(파루시안(παρουσίαν 임재)하게 된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에서『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영의 몸에 대한 이야기다. 변화라는
것은 육의 몸이 갑자기 영의 몸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육의 몸은 죽고, 영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육의 몸이 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시에 살아남아서 영의 몸을 입고 있는 자는 부모로부터 받은 육이 홀연히 사라질 것이다(휴거). 그리고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다(카타베세타이καταβήσεται.)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죽으신 예수님의
몸은 사라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 나타나신 것을 통해서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죽으신 예수님의 몸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과 다른 것이다.
15장 51-52절『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코이메데소메다)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호 네크로이)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코이메데소메다는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호 네크로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자들이다. 여기에서
죽은 자의 부활과 산자의 부활을 말하고 있다. 영적으로 죽은 자의 부활은 심판의 부활로, 영적으로 산자의 부활은 생명의 부활로 나아간다. 그리스도
이전에 죽은 자 중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던 믿음의 선진들은 생명의 부활로, 그렇지 못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가게 된다. 이 부활은 마지막 심판 때 일어난다. 그러나 살아있는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현재적 부활로 나타난다. 현재적
부활은 성도의 심령 속에서 육적 몸이 죽고, 영적인 몸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면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진다)
예수님은『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성도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성막이다. 주님이
안 계신 곳은 없지만 아무데서나 만날 수는 없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모세를 통하여 하늘의 모형을
보고 만든 것이 성소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방법은 하늘의 모형대로 사는 길
외에는 없다.
성전에 들어가면 마당이 있다. 마당에는 놋 제단에서 짐승을 죽여야만 한다. 죽인
다음에는 반드시 물두멍에서 물로 씻어야 한다. 성전 마당에서는 두 가지가 역사해야만 한다. 제물이 죽어야 하고 죽음을 기초로 해서 씻어야 하는 것이다. 성전
마당이 길이다. 이 세상의 하늘이 보이는 곳이다. 성소에
들어가면 세상의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감람유의 등불이 켜져 있다. 그리고 진설병의 떡이 있는데, 이 곳이 진리다. 그리고 지성소에 들어간다. 지성소에서는 법궤가
있는데, 바깥에서는 만나가 시간이 지나면 썩지만, 법궤
안의 맛나는 썩지 않는다. 그 옆에 싹난 아론의 지팡이도 있다. 이게 영생이다. 지성소 안에는 생명이 역사한다.
제사장이 지성소 안에 피를 힘입어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예수님의 길과 진리와 생명에 대한 내용이 성막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성전 마당에만 들어가도 생명을 얻는 것 처럼 가르친다. 바로 예수를 영접하라는 것이다. 죽음이 역사하기 전에는 생명이 역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는 믿음 만이 구원의
시작이다. 양을 죽이는 자가『양이 바로 자기』라는 사실을 깨닫고,『죽은 양과 연합되는 것』이다. 내가 죄를 속죄받으려고 예수를
죽였기 때문에 죽은 예수가 바로『나』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삼년 동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을 다 믿었지만 예수님이 죽는다는 말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대제사장의 손에 죽는다』는 말은 제물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제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성소 마당에서는 죽은 고기를 불로 태워서 영문 밖에 재를 버리지만, 성소 안에는 피 외에는 들어갈 수 없다. 주님은
육적 죽음을 이렇게 싫어하신다. 왜냐하면 육적 혼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탐욕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피
속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성소 안에는 생명 만 들어간다.
성전 마당에서 죽음(육)은 뒤로 나가고 생명(피)은 안으로 들어간다. 그 피가 지성소에 들어가면 주님의 거룩한
영의 역사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모형을 사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것이다. 모형을 사는 사람을『성도』라고 한다. 교회 처음
나온 사람에게 부르는 성도가 아니라 참 신자를 말한다. 그래서 주님이 성도들에게『너희가 성전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배당이 성전이 아니라 성도가 성전이다. 성도들이
모인 곳은 교회가 되는 것이다. 교회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성전인 성도들이 모인 곳이 교회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부터 신약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전 건물의 휘장이 찢어졌을 때부터 신약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예수님이
죽기 전날 밤에『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하셨다. 평생 예배드렸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모형이 우리의 삶이 될 때만 구원받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의 순서가 삶의 순서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소 마당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그렇게 해야만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제사장이 피를 들고 성소로 들어간다. 그래서 죄인도 함께 들어간 것이다. 성소에 들어가지 못한 자는 무늬만 신자인 셈이다. 성소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간 자와 지성소에 들어간 자는
다르다. 지성소에 들어간 자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성도들의 심령에
하늘의 성소가 지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지성소에 들어가는 자가 있는 것이다. 성소에 들어가는 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들어간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자는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번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지성소로 들어갔는데, 마찬가지로 성도들 중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가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은 성령세례를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의 권세와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부여받는 것이다.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서 하는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기도를 보면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서 성도는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진다는
사실이다.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임마누엘)
마태복음 1장 24-25절『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예수는
구원자라는 의미이고, 임마누엘은 구원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임마누엘이
된 예수가 사람들에게 임마누엘 할 때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역시 임마누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역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간다. 성도와 그리스도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라는
육체에 여호와께서 성육신 하셔서 임마누엘 된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성도는 오직 예수의 이름
안으로 들어가서 그 분을 찾고 부르는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이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여호와이시다. 히브리인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고유명사를 엘이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을 글로 표현할 때
그 부분을 공란으로 두었으며, 히브리 사람들이 말할 때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창세기 4장 26절에서(요드 바브 헤 바브) 라고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 이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나님이 직접 이름을
모세에게 밝혔는데, (미소라 성경:에흐에 아세르 에흐에) (영어: I am who am) 라고 하셨다. 그런데, 히브리어의
의미로서는 처음이시고 마지막이신 하나님, 세상에 데리고 왔다가 하나님 나라로 데리고 가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요한계시록 22장 13절에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라고 하셨다. 처음은 첫사람 아담을 의미하며, 마지막은 마지막
아담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 땅에 범죄한 천사들을 데리고 오셨다가 다시 그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여정이다.
히브리인들이 이 이름을 『아도나이』라 불렀다. 그러나 여전히 기록된 구약성경에는 공란이었다.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명으로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에서 지파별로 6명씩 차출하여
알렉산드리아에서 72일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을 70인역이라고
하는데, 공란으로 되어있던 하나님의 이름을 YHWH로 표기하고 헬라어로 큐리어스(Kurius)라고 불렀다. 라틴어로는 도미너스(Dominus)라고 한다. 그러다가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디아스포라들이 YHWH에 adonai의 모음 a, ai를 붙여 YHaWHai로 전환해서 야훼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후 번역 과정에서 YHWH 부분을 영어로 Jehovah로 표기했다.(미국표준) 오늘날 미국 New
International Version에는 The LORD 로 번역 표기하고 있다. 영국에서 번역한 King James Version도 The LORD 로 되어있다. 성부는 대문자(The LORD)로 성자는 소문자(The Lord)로 표기했다. 한글성경(개역개정)에는 The LORD와 The Lord가 『여호와, 주』라고 혼재 되어있다. 창세기
4장 26절, 시편 110편 1절 등 구약성경에는 여호와, 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 34절
등에는『주』로 되어있다. 왜 다르게 표현하는가? 삼위의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여호와)은 한분이시지만 삼위로 역사하신다. 보좌의 여호와 하나님(LORD),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Lord), 성령이시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셨다. 보좌의
하나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아들도 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구약의 여호와이심을 요한복음
등에서 나타내신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보좌의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주님(Lord)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회개하는 죄인들을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나의 구원자(메시야)라는 뜻이다. 나의 구원자이신 주의 이름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여호와이시지만
이 땅에서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다. 사도행전 2장 21절에서
누구든지 주(Lord)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아무나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의 가족이 된 자가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그의 가족을 아들과 자녀라 칭하신다. 회개하여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가 주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히브리서 4장 1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뒤엘렐리도타 투스 우라누스)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호몰로기아스)』
디엘렐뤼도타 투스 우라누스(διεληλυθότα τοὺς οὐρανούς)는 그 하늘들을 통과하여 가신 이라는 의미다. 투스(τοὺς정관사 그) 우리누스(οὐρανούς하늘들)에서
하늘들(복수)은 성도들 각 사람마다 임재하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승천했다는 말은 성도의 각 사람의 심령 속에서 일어난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래서 제대로 번역하면, 『그러므로 우리에게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심령 속의 하늘들을 통과하여 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계시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붙들자.』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령 속에서 승천하신 것이다.
5) 심령 속으로 주님의 공중재림과 임재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8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여기에서의 강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재림을
의미하는데, 헬라어로 『카타베세타이καταβήσεται 』이다. 공중재림이란 용어는 성도의 심령 속에 일어나는
것으로 성도가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를 영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 할 때에는 마지막 심판이 일어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은 자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로 가고, 다음에 영의 몸을 입고 있는 성도들도 영의 몸으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절에서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강림한다는
말은 영어로는『he is coming』으로 마치 재림하시는 예수를 연상한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은『파루시아παρουσίᾳ』로서 파라(옆에)와
루시아(있는 것)의 결합된 단어다.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파루시아는
임마누엘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야고보서 5장 7절『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파루시안) 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강림(재림)으로 번역된 파루시안은 파라(옆에서)와 루시안(존재하다, 있다)의 합성어로서, 성도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호 로고스가 들어오는 것을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비유하며 설명한다.
베드로후서 1장 15절『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파루시안)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파루시안(παρουσίαν)은 예수의 강림이 아니라, 옆에 계시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도 안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말한다. 그의 크신 위엄을 본 것은 베드로가 요한, 야고보와
함께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빛처럼 빛나는 변화의 광경을 목격한 것을 의미한다. 이런
놀라운 광경을 베드로가 목격했는데, 바로 이것이 성도 안에서 임재하는 파루시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임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성도에게 그리스도가 임재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1장 19절에서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확실한 예언은 그리스도께서
성도 안에 계셔서 그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성도는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야가
세밀한 주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성도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둠에서 비추는 등불처럼, 밤을 지나 새벽의 여명에 빛나는 샛별처럼, 성도의
마음이 그러할 때,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이렇게 들려온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할 때, 성도들은
전도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주의해서
들으라는 것이다. 샛별(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떠오른다는 것은 주의 음성이 마음에 감동되어 떠 오르는 것이다. 베드로는
주의하라고 했다. 마귀의 음성인지 하나님의 음성인지 분별하라는 것이다. 마음에 떠오르는 하나님의 음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령의 마음으로 성경을 바탕으로 접근하라는 것이다.
에베소서 3장 17절『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카토이케사이
톤 크리스톤κατοικῆσαι τὸν Χριστὸν)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카토이케사이 톤 크리스톤(κατοικῆσαι τὸν Χριστὸν)은 그리스도께서 심령 안에 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심령 안에 호 로고스가 있게 되는 것은 두가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첫째가
믿음이고, 두번째가 사랑이다. 믿음은 내가
믿는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인 것이다. 사랑은
아가페로서 하나님의 사랑이다. 인간인 내가 그런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로 인한 사랑인 것이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요인들과
가짜 신도들
(영적 전투)
로마서 7장 21-25절에서『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성도는 성령의 법을 따르는 자들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 다른 나라로 이민가면, 옛 나라의
법을 따를 필요가 없어진다. 새로이 이민간 나라의 법을 따르고 그 나라의 사람이 되는 것처럼, 옛사람에 대해서는 이미 죽은 자임을 기억하고,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옛사람이 서서히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로마서 6장 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부활도 이전의 부모로부터 받은 육적 몸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새롭게 태어나는 영의 몸이다. 이전의 몸은 죽어서 사라지고,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육체 속의 두가지 모순 속에서, 갈등을 참아내고 육적인 것을이기기 위해서는 오직 기도만이 살길인 것이다.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는 말이다. 사탄의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성도는 어떤 기도를 해야만 하는가? 이 세상을 위한 기복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기도가 답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알려주셨다. 이러한 형식으로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주기도문을
외워서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의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이다. 주기도문은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는 기도와 같은 개념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은 하나님이 알아서 채워주시겠다는 것이다.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지 않은
신도들)
첫째,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
마태복음 3장 2절에서『회개하라 천국(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예수님과
부자청년과의 대화를 통해서 좀 더 천국과 하나님 나라를 이해할 수 있다. 마태복음 19장 23절에서『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πλούσιος플루시오스)는 천국(τὴν βασιλείαν τῶν οὐρανῶν텐 바실레이안 톤 우라논)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그러나 마가복음 10장 23절에서『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τὰ χρήματ타 크레마타)는 하나님의 나라(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 θεοῦ텐 바실레이안 투 데우)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재물이 있는 자는 말 그대로 재물이 많은 자를 의미한다. 헬라어
타 크레마타를 재물이 있는 자로 번역되었으나, 타 크레마타는 복수로서 재물들이다. 많은 재물을 의미한다. 그런데, 마태복음 19장 23절에서
번역된 부자(πλούσιος플루시오스)는 재물에 대한 탐욕을 가진 자를 의미한다. 탐욕을
가진 자는 심령 속의 셋째하늘이 임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된다. 성도가 거듭나서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을 때, 육으로 비롯된 탐욕이 성도를 괴롭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싸움이 일어난다.
둘째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를 따르는
자들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본주의란 인간 존재의 목적인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고, 단지 인간 이익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상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기독교를 의미하는 것이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율법주의는 그리스도를 제거한 사상인 것이다. 교회
안에서 만연한 율법주의 사상은 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세우게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이다. 십계명 속에서 죄를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계명에
얽매여 그것을 지키느니 마느니 하는 것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계명이지만, 하나님의 죄인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향한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규정에 얽매이게 하는 것이 율법주의다.
영지주의의 근본적 사상은 인간에게 신성이
있는데, 물질인 육체에 영이 갇혀있어 신성이 감추어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혜를 통해서 신성을 회복하여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지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어떤 하나의 형태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적 견해가 다양하다. 어쩌면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가 영지주의의 한 분파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기독교에 이런 사상이 들어왔다면 아마도
놀라울 것이다.
영지주의를 추구하는 종교들은 대부분 사상이
같다. 마음 속에 있는 신성을 깨우는 것이다. 그래서
노력으로 그것을 이루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통합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기독교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성경(로마서 1장)은
인간의 마음에 신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탐욕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마음의 탐욕이
바로 자기라는 옛사람이다. 열심히 거룩한 생활을 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옛사람이 죽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말씀을 배경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왜 마음의 탐욕이 기독교에서는
죄인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기 때문이다. 영지주의
자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지
않는 요인들이 여러가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 교인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가 바로 심령 속의 셋째하늘이 세워지지 않은 자들이다.
6) 심령 속의 셋째하늘이 임한 자들의 신앙
생활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말씀이신 그리스도께
나아가기 위한 첫번째 단계를 지나 완전한 단계에 이르라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서 5장 1-2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투
크리스투 로곤)의 초보(테스 아르케스)를 버리고(아펜테스)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페로메다)』 (개역개정)
투
크리스투 로곤(τοῦ Χριστοῦ λόγον)은 그리스도이신 말씀이다. 즉 말씀이신
호 로고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테스 아르케스(τῆς ἀρχῆς)는 첫번째(단계)다. 아펜테스(ἀφέντες)는 (첫번째 단계를) 지나서 나아가라는 것이다. 첫번째 단계는 성도의 심령가운데, 호 로고스가 임재하시는 것이다. 두번째는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위에서 열거된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닦는 것』은 첫단계 이전에 하는 것인데, 첫단계 이후에 이전으로 돌아가지 말고 다음 단계인 완전한 데로 나가라는 것이다. 페로메다(φερώμεθα)는
나아갈지니라가 아니라, 나아가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다. 문법적으로
가정법 현재 수동태로서 히브리서 기자와 듣는 자 모두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성령세례를 받는 일이다. 그래서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 가운데, 들어오시고, 성도의 영도 호 로고스의 성령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성령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성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둘째 단계 역시 어떤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호 로고스와의 관계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다. 성도가 호 로고스와 대화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결과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은사를 주신다. 히브리서 5장 4절에서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며, 여전히 죄를 회개해야만 하며, 세례와
부활에 대한 의미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단계는 커녕 첫번째 단계 이전의 초보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17절에서 사도바울은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라고 말했다. 갈라디아서 4장 9-11절에서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성도는 그리스도의 초보단계를
지나 심령 속의 호 로고스인 그리스도의 임재를 바라는 기도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4장 48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에안)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우 메 패스튜세테)』우 메 패스튜세테 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결코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다. 표적과 기사가 믿음과 연결된다. 믿음이 있는 자는 표적과 기사가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강한 자는 표적과 기사를 보는 것이다. 에안(만일)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으므로 표적과 기사를 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누구나 표적과 기사를 보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표적과 기사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종교적인 믿음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표적과 기사에 관심이 없는 자는 말로만 주님을 믿지만 주님을 실제 만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믿는 믿음은 자기가 믿는 믿음이 된다. 하늘로부터
온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심령 속의 지성소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만나야만
한다.
7) 지성소 기도
(파라스테사이 παραστῆσαι 하나님 옆에 서 있는 제사장)
로마서 12장 1절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파라스테사이)』는 것이다. 산제물로 드리는 자는 바로 제사장이다. 제사장은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고 그 분을 위하여 말씀을 맡은 청지기(책사)가 되어야만 한다.
(들맆세이 θλίψει 지성소로 들어가는 자의 영적 어려움)
하나님은
제사장으로 하여금 지성소에 들어오도록 하신다. 오늘날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성령세례 받은 사도적인 사역자일 것이다 그가 지성소에 들어가는 목적은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화목을 위한 중재이다. 그
목적을 위해 죽었던 영을 살리기 위해 사역을 하는 것이다.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께 대해 죄를 지은 존재이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대적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을 대적했을 때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대제사장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에 자신도 함께 죽었음을 깊히 느껴야 한다. 그리고
복음의 대상들을 떠 올리면서 그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느껴야 한다. 이 과정이 들맆세이(한글 개역개정: 환란으로 번역) 라고 한다. 들맆세이는 하나님께서 지성소로 들어오라는데
제사장이 떠밀려 들어가는듯한 마음의 고통을 의미한다.
(휘포모네 ὑπομονῆ와 파루시아 παρουσίᾳ)
휘포모네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린다. 파루시아는 지성소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기도하는 자의 영과 성령으로 교감한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영은 성령을 의미하며,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바에 따라 휘포모네와 파루시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충만을 통해서 주님의 임재를
알 수 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모든 삶이 성령의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는 가를 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사가 주어지게 되는데, 그 중에서 하나가 방언이다. 기도하는 때에 자기도
모르게 방언이 나온다면 하나의 은혜의 징조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통을 위해 방언을 억지로 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 13-14절에서『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맺지 못한다』라고 되어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기도를
하면 성령을 통해 기도를 하지만 마음은 열매맺지 못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래서 14장 15절에서 자신은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한다고 했다. 영으로 기도한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와 관계되는 기도를 한다는 말이다. 세상의 것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므로서 하나님의 임재는 순간 환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감동주신다. 만일 세상적으로 사는 사람이 특별한 체험을 하겠다고 방언으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지성소 기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호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삶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슈케προσευχῶν 관상기도와 아쿠테 Ἀκούετε 하나님의 음성 듣으라)
지성소 기도를
하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 건설과 관련해서 자신이 하고있는 일을 고하고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님과 교감하고 대화를 시도한다.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첫째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어야 한다.
마가복음 4장에서 씨뿌리는 비유가 있다. 4장 4절에서 들으라(아쿠테) 라고
말을 한다. 4장 9절에서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늘 주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이다. 들을 귀가 열려있는 자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와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이다.
호 로고스는
세밀한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들을 귀는 육적 귀가 아니라 마음의 귀를 의미한다. 즉 심령으로 울리는 음성인 것이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다른 사람은 듣지 못했다. 귀머거리는
눈으로 상대방의 소리를 듣는다. 영적인 음성은 육적인 귀로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호 로고스에서 로고스(말씀)의 헬라어 의미는 생각의 표현이다. 즉 하나님의 생각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생각의 표현은 인간의 뇌를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심령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심령은 영의 마음이다. 우리의 심령은 어디에 있는가? 요한복음에서는 배에서 생수가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몸의 중심인 배에 있다는 것이다. 심령에서 나오는 마음과 뇌에서 나타나는 생각을 구분해야만
한다. 뇌의 생각에 의지하지 말고 배의 아랫부분에 마음을 집중하여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대화하듯이 주님께 묻고 울림을 통해 말씀을 듣는 것이 훈련을 통해서 대화가 길어지게 된다. 아이가 엄마와 대화하듯이 처음에는 짧게 성장하면서 길게 대화를 하게 된다.
둘째, 말씀을 붙잡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호 로고스께서
말씀하실 때(씨를 뿌릴 떄), 그 씨(말씀)가 네가지의 땅에 뿌려진다는 것이다. 호 로고스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심령
속에서 하시는 호 로고스의 말씀이다. 그러나 심령 속의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듣는 자는 기록된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호 로고스의 말씀이 들릴 때 순간 기록된 성경 말씀과 조율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 밭, 좋은 땅에 뿌려진다. 4장 14절에서부터 이 비유를 해석해주신다. 길가 같은
마음 밭에도 주님이 말씀하시는데 사탄이 즉시 가져간다. 이들은 교회를 다니지만, 호 로고스에 대해서 전혀 관심없는 자들이다. 돌밭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지만, 그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믿음의
뿌리가 없으므로 환란과 박해(세상의 어려움)가 오면 말씀을
붙잡지 못한다. 돌밭은 호 로고스에 대한 믿음이 약하다는 것이다. 가시떨기 밭도 말씀을 듣고 받아드리는데,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때문에 말씀을 막는 것이다. 좋은 땅은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는
자들이다.
셋쩨, 호 로고스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지켜야 한다.
씨가 열매를
맺으려면 씨의 껍질이 죽고, 싹이 나와서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는다. 주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붙잡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인도하는 것이다. 호 로고스의 말씀을 마음에 품지 않으면
육체로부터 나타나는 욕망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5-7절에서『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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