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세례만 알고, 성령세례에 대해서는 모르는 자들, 말하지 않는 자들
교회에서 행하는 세례의식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외적인 표현이다. 그것을 물세례라고 한다. 그러나 내적인 표현으로서 성령세례가 있다. 물세례와 성령세례의 차이에 대해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물세례는 말 그대로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첫째, 물 세례는 죄를 씻는 의미를 가진다. 사도행전 22장 16절에서『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따라서 세례요한이 말하는 세례는 죄를 씻는 의미를 갖는다.
둘째, 물세례는 죄에 대해서 죽는 의미를 갖는다. 로마서 6장 2-4절에서『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그리고 바울은 이어서 로마서 6장 6-7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세례를 통해 죄의 몸이 죽었음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고(구원의 성령), 그것을 증거하도록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 (보혜사 성령)
세례를 받을 때, 마음의
상태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 죄씻음의 물세례만 받았는지, 죄에 대해서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전도를 위해 성령세례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는『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오늘날
교회에서 주는 세례는 예수님의 이와 같은 명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다. 세례라는 말보다 당시에는 침례라는
말의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세례는 죄에 대해서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세례 의식이 거듭남의 표현인 것이다. 세례의식을 했다고 해서, 참으로 거듭났는가에 대해서,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형식적인 세례를 받았지만, 영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도 있을 수 있다. 세례의 참 의미도 모르면서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성령세례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성령 충만)인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성령 충만의 세례를 주시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남과 성령세례는 다른 의미를 갖지만, 동시에 일어난다. 성령으로 거듭남은 내적인 성령의 역사라 하며, 성령세례는 외적인 역사라 한다. 내적인 성령의 역사는 구원과 관계되지만, 외적인 성령의 역사는 전도와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듭남은 한번으로 족하지만, 성령세례는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계속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선물이라고 표현된다.
성령세례는 성경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사도행전 1장 4-5절『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리고 승천하시면서 이렇게 당부하시고, 그 결과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2장 1-4절에서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베드로가 성령 충만함을 받고 모인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주변 국가의 디아스포라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있었다. 갑자기 제자들이 방언을 하고 혀가 꼬여 있으므로, 어떤 무리는 술 취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여기에는 구원의 네 단계 과정이 있음을 보게된다.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함께 죽은 자임을 믿으며,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서,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는 로마서 6장 7절의 말씀을 기억해야만 한다.
성령이 임한 다른 사건은 사도행전 8장의 이야기다. 사마리아
성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빌립 집사가 그곳에 가서 많은 전도를 하고 기적도 일으켰다. 그곳에 마술쟁이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도 병자들이 치료되는
기적을 보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세례에 대해서 알지 못한 것이다. 예루살렘에 있던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그들에게 가서 성령세례를
받도록 한 것이다.
사도행전 8장 16-20절에서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마술쟁이 시몬은 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을 돈으로 살려고 했다.
베드로는 마음이 악하다고 하면서 회개하라고 말했다. 물세례는 외형적으로는 의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물에서 옛사람이 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새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새생명으로 거듭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성령 세례는 참된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이 세상 육적 목숨이 다 할 때까지 믿음을 지키고, 이웃에게 전도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 다음에 성령이 임한 사건은 사도행전 10-11장의 베드로와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와의 이야기다.
사도행전 10장 3-5절에서『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베드로는 욥바라는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 유명한 이야기인 하늘로부터 보자기 같은 한 그릇이 내려오고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 환상이었다. 그런데, 어떤 소리가 있었는데,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라는 소리였다. 베드로가 계속 부정하다고 거부하니,
세번이나 반복해서 먹어라고 하고 다시 하늘로 보자기 같은 그릇이 올라가는 환상을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시몬(베드로)의 집 문을 두드리고, 성령이 베드로에게 의심하지 말고 따라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을 따라 가서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는데, 동역자들이 베드로가 무할례자 집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비난했다. 베드로가 그 경위를 설명하는 장면을 11장에서 볼 수 있다. 사도행전 11장 15-16절에서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이와 같은 성경적 사실을 통해서 생각해 볼 때, 성령세례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거듭난 자에게 전도하라고 성령 충만을 주신다. 거듭난 자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은 내적 구원의 성령, 성령세례는 외적 보혜사 성령이다. 이 둘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세례를 죄를 씻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세례의 의미를 잘못 생각한 것이다. 세례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죄의 속성인 옛사람의 죽음과 이를 통한 죄사함이다.
죽지않고는 죄 사함이 없는 것이다. 구약시대 죄인들은 동물을 죽여 그피를 제단에 뿌려 죄를
용서받았다. 죄인은 죽지 않고, 그 대신 동물이 죽은 것이다. 이때 죽은 동물이 자신임을 깨닫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죄사함도 없는 것이다. 형식적인 제사의식에 불과할 것이다. 오늘날도 죄의 몸(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지 않고 날마다 죄용서만 빌고 있으면, 구약시대 형식적으로 동물을 죽여서 피를 제단에
뿌리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은 자는 죄가 그대로 있으며, 거듭남도 없고,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세례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주여 주여 외쳐도 성령이 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자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와 연합된 것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새생명으로 거듭나게 해 주시며, 성령을 선물로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무나 성령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자신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십자가의 예수와 함께 연합됨을 믿을 때,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 주시고, 성령으로 세례도 주신다.
십자가의 예수와 연합되지 않으면, 거듭남이 없으므로, 성령세례가 아니라, 형식적인
세례에 불과한 것이다.
열처녀의 비유에서도 성령을 받았는가 아닌가를 비유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25장 1-2절『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열처녀는 모두 등불을 가졌다. 모두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는것이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다른 기름통을 가진 것이다. 즉 생명의 성령의 빛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빛을 밝힐 수 있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처녀는 율법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빛을 받았지만, 성령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결국
어둠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기름은 감람유를 의미한다. 구약에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을 때 사용하는 감람유이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성령이 임한 것을 기름부은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결국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믿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거듭나서 성령세례를 받는 자다. 그리스도
안에서 빛이 되어 빛의 생명을 남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자가 된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율법적인 생각과 육의 마음으로 판단하여 완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선택적으로 받아드리는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데,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옛사람이 죽지 않았으며, 성령이 없으며, 미련한 다섯처녀에 해당하는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