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대상을 육으로 생각하고 가르치는 자들
인간은 육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 육과 영이 결합되므로서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 것이다. 따라서 영은 인간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결합체의 한 부분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는 대상은 육이 아니라 영인 것이다. 전도서 12장 7절『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육은 흙으로부터 왔으므로 땅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영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과 사두개인들과 대화에서 사람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사두개인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이 대답하신
내용이다. 누가복음 20장 35-36절에서『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부활하면 천사와 동등이라고 했다. 즉 육체와 결합된 영은 육이 죽으므로 다시 부활하여 천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유다서 1장 6절『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베드로후서 2장 4절『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흑암, 구덩이가 바로 물질세계를 의미한다. 영은 영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 하는데,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사탄을 따라간 천사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흙속에 갇히므로서 인간이 된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사탄은 하나님없이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많은 천사들을 유혹했다. 그래서 천사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못하고 사탄을 따라간 것이다.
창세기 1-3장의 이야기는 이 에덴동산의 사건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무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비유를 통해서 창세 전의 일을 설명하시는 것이다. 뱀은 사탄을 상징하고, 하와는 사탄을 따라간 범죄한 천사를 상징한다. 아담은 죄의 몸을 주기 위한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사탄을, 그 열매는
사탄이 주는 탐욕인 것이다.
영은 영의 몸을 입어야 한다. 인간은 영이 육에 갇혀있는 모양이다. 육을 벗고, 영의 몸을 입어야만 한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성도가 살아있을 때, 육의 몸이 죽어야 영은 영의 몸을 입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기 육체를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육체를 상징하는 육의 몸(옛사람)을 등장시킨다. 로마서 6장 3-4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는 옛사람(육의 몸)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옛사람은 곧 죄의 몸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탐욕이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가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옛사람은 육의 일을 도모하는 생각(탐욕)이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서『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따라서 성경은 옛사람(탐욕)은 죽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때 자기가 바로 탐욕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육으로 비롯된 자기(혼)라는 마음이 탐욕의
주체다. 이를 성경 말씀 앞에서 부인하라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이 영을 살리신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옛사람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영을 살리기 위함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영이 죽어있다. 영이 죄의 몸에 갇혀있으므로 죽어있는 것이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의미를 갖는다.
거듭남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세례는 거듭나는 모습을 그린다. 형식적인 세례 속에 마음의 세례가 들어있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탐욕의 마음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투영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태어나라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된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곧 “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회개는 이 세상에서 죄를 지은 것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 회개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말한바『나는 날마다 죽노라』라는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야 거듭난
자가 된다.
거듭난 자는 예수님의 부활의 몸처럼, 보이지 않는 영의 몸을 입은 자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건 이전에 죽은 자를 여러 번 살리셨다.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셨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으며,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베드로와 바울도 죽은 자를 살리는 내용이 사도행전에 등장한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들의 몸은 언젠가 다시 죽어야 하는 육체에 불과한 몸이다. 그래서 소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의 부활체와 소생한 몸을 비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몸은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벽을 뚫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 얼굴도 변형되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의 시체가 그대로 다시 부활했다고 믿고 있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해서, 영생하는 몸으로 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몸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을 입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형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이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해 못자국과
창자국이 있는 몸으로 변신해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부모로 부터 받은 육신이 부활한다고 믿는 사람은 영에 대해서 관심이 적다. 따라서 죄에 대해서도 육적인 세상죄만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육의 눈으로 죄를 바라보므로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을 믿는 자는 극소수일 것이다. 영의 몸으로 부활한 것을 믿는 자는 육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죽은 것임을 믿는다. 따라서 죄에 대해 날마다 죽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부활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는 없어지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된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그대로 부활하여 살아난다고 믿는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영에 있지 않고 육에 둘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죽은 후에 가족들이 죽은 시체를 냉동보관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화장하지 않고, 땅에
묻는 것이다. 언젠가 부활 때 살아날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일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를 깊히 묵상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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