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종교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믿고, 가르치는 자들

 요한복음 14 6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말씀이다.

기독교의 교회는 구원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구원의 의미를 우리는 깨달아야만 한다. 구원은 죽을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건져냄을 입는 것이다. 하나님이 회개하는 죄인을 건져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회개하는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회개의 의미가 중요하다. 이 세상의 교회 사람들은 세상에서 지은 죄만 생각한다. 그래서 교인들이 세상 속에서 지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날마다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므로, 율법에 비추어 날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가 죄를 범하면, 즉시 고백하고 예수의 피로 용서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죄는 두가지가 있다. 육적 마음이 짓는 세상죄와 영의 마음이 짓는 하나님께 대한 죄가 있다. 육적 마음이 짓는 죄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도 있지만,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도 있다. 예수님은 마음으로 짓는 것도 죄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영의 마음으로 짓는 죄는 세상죄가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죄다.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들이 영의 죄가 된다. 세상죄는 용서받을 수 있어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하나님께 대하여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그리스도를 창세 전에 예정하셨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하나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여인(마리아)을 통하여 육체를 입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히브리서 9 28절에서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린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기 위함이었다.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죽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중보자를 내세우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되는 자는 죽은 자로 하나님이 여겨주시겠다는 것이다. 로마서 6 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세례는 물에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상징한다. 죄인이 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바 되어야 하는가? 바로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 죽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믿는 자는 하나님이 그 죄인도 죽었음을 인정하고 죽었던 영을 살려주시는 것이다. 이 새생명은 영의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20-21절에서,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릴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그래서 물에서 죽은 자,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새생명에 이르게 하신다. 성령께서 영을 살려주시는 것이다. 형식적인 세례를 받는 자는 이런 의미조차 모르는 자들인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께 죽어야 할 존재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됨을 진심으로 믿을 때, 하나님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 이것이 성령세례인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영이 살아난 자는 세상죄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속량하기 때문이다. 속량은 피값으로 사는 의미를 갖는다.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속량하여 피값으로 사탄(세상)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세상에 대해서도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로마서 6 6-7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로마서 8 1절에서와 같이 더 이상 세상죄를 정죄하지 않으신다.『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세상죄를 다 가지고 가신 것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표현했다. 이를 믿는 자는 죄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이를 믿는 자는 율법에 대해서 죽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죄와 구원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기인한다. 타 종교가 말하는 구원은 신적인 존재를 믿으면, 그 신이 사후에 믿는 자를 낙원으로 인도한다는 그런 논리로 말하는 것이다. 그 믿음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신적인 존재와 신자 사이에 주종 관계가 성립되기 위해, 신자는 신적인 존재를 위해 무엇인가 헌신해야 하고, 신적인 존재는 그 헌신적 노력의 결과로 대가를 보상해주는 그런 개념이다. 또한 스스로 자각적 수련을 통해서 신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하며, 그 노력의 결과로 스스로를 신적인 존재로 보상되어진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구원론은 다른 종교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모든 종교에는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의 논리는 기독교 외의 종교에도 그들 만의 구원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에 빗대어 산을 오르는데,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길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따라서 기독교의 구원을 다른 종교와 함께 논하는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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