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십계명에 대해서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자들

 십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가, 아니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정확하게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상황은 어떠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속으로 들어간 자는 십계명을 그래도 지켜야 하는지, 아니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지 혼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태복음 23 23절에서 율법 속에 신과 의와 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은 무려 613가지나 되는 규정들이다. 그 중에서 도덕법이라는 십계명을 비롯하여, 의식법, 민법 등 수많은 종류의 규정들을 백성들이 지켜야만 했다. 십계명은 율법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오순절에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반드시 지키라고 주신 말씀이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모든 죄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죄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르게하는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다. 율법과 복음은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이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야 할 존재가 되므로, 동물을 죽여서 그 피를 제단에 뿌려 죄를 용서받을 정도로 엄격한 규정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지키도록 하신 것은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게 해주시기 위함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하와처럼, 모든 인간은 자기의 의, 즉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마음 속에 우상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하신 것이다.

백성들이 죄를 짓고, 하나님께 죄 용서의 제사를 드리고, 또 죄를 짓고 제사를 드리는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도저히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물에 갇힌 물고기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장차 오실 영원한 속죄제사를 드리게 될 메시야를 바라보라는 것이었다. 갈라디아서 3 23-24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히브리서 7 11-12절에서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죄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을 지켜야하는가 아니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의 조항 하나 하나를 분석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따라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거나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는 식의 이분법이 얼마나 낮은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성도는 율법을 지켜야한다는 강박 관념과 죄의 그물인 법의 속성에서 벗어나, 율법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참 의미를 깨닫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능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나타난 참 의미는 궁극적으로 너희들은 모두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죄성을 가지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알려주시며, 장차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지 않으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려주신다. 그래서 율법의 규정 하나 하나에 얽매이지 말고, 율법 안에 감추어진 참 의미를 발견하고,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되어 세상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라는 것이다.

율법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상징하고, 복음은 생명나무를 상징한다. 생명 나무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속에 감추어져 있다. 즉 율법 속에 복음(메시아:그리스도)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구약이 자신을 증거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구약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으로 율법은 바로 언약의 말씀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스스로『구약에서도 있었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다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 약 2000년 전의 인물이다. 요한복음 8 55-59절에서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다 라고 했다. 그리고 함께도 지냈다고 했다. 창세기 14 18절에서『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히브리서 7장에서 이 멜기세덱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바로 예수님을 만났다는 말이다.

요한도 예수님이 구약시대에 예수님이 계셨다고 했다. 요한복음 1 1절에서『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말씀이 육신이 되신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세례요한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요한복음 1 15절에서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먼저 계셨다 라고 했다.

히브리서 11 24-26절에서 모세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누가복음 24 27절에서 길을 가다가 두 사람의 제자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자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리고 갈리리 바닷가에서 24 44절에서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나라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결국 구약시대의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5 39절에서『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여기에서 성경은 바로 구약성경을 말한다. 구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씀이다. 이사야서 34 16절에서『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여호와의 책은 구약성경을 말한다. 모든 성경을 다 읽어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율법 속에는 거듭남의 비밀이 있다.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함(구별됨)이다. 거룩함은 깨끗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을 말한다.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은 멸해지는 것이다. 예수님이『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거룩함은 세상에서의 삶과 다른 존재로서의 삶을 말한다. 레위기 11 44-45절에서『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여기서『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라는 말을 교회 사람들은 진실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말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으로 부터 태어난 존재라는 것이다. 이전의 것은 죽었음을 나타낸다. 거듭남의 비밀인 것이다. 거듭남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존재의 변화를 말씀해주신다.『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땅의 길 짐승은 인간이 아무리 깨끗하게 해 주어도 몸을 더럽게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 부터 태어났지만, 여전히 부모로부터 태어난 속성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 3-10절에서, 니고데모라는 율법 선생이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그는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했을 때, 그는 도무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가버렸다. 물은 부모로 부터 받은 몸은 죽었음을 상징한다.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새생명을 받는 것이다. 곧 죽은 자가 새생명으로 태어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 10절에서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했다. 즉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희생제사를 지낼 때 죽은 동물이 자신임을 깨닫고, 죄에 대해서 죽은 자라는 것을 알고 인간 스스로는 도무지 죄에 대해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었는데, 아무도 그러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희셍제사를 통해서 메시아를 발견하라는 것인데, 그들은 께닫지 못했다.

하나님은 창세기 3 15절에서 분명히 여자의 후손, 씨의 약속인 메시아를 약속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약속을 깨닫는 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성전 문에서 헛되이 제사를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십계명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에 유의해야만 한다. 그 속에 진리의 말씀이 있는 것이다. 그 속에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새언약에 참여한 자는 의무 사항인 조문에 얽매이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 전제를 바탕으로 하여 십계명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십계명을 지키려고 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외에 또 다른 것을 지켜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되고, 십계명을 지킨다고 하면서 안식일의 규정도 마음대로 변궤해서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다고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어리섞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니,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것 같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법은 이제 필요가 없지만, 도덕법은 지켜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에 도움을 준다느니 하는 식으로 신도들을 헷갈리게 하는 술취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러한 이분법이 아니라 율법 속에서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는 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진리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십계명의 조문 하나 하나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죄인으로서 죄로부터 빠져 나갈 수 없는 존재들이며, 그래서 명령의 규정들로 만들어진 율법이 필요했지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이제 죄의 노예가 아니므로 의무적인 규정이 아니라, 자율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자율적인 것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자율은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십계명의 '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에 대하여 사람들은 사랑해야 할 규정이 있으니 사랑해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사랑하려고 한다. 여기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다. 영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라는 것이다.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할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것을 하지 않으면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게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물을 죽여 제물로 바쳐야 했다. 죽은 동물이죄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죄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상 제물이 필요하지 않다.

규정의 의미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영을 살게 하기 위해 필요한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성도들은 세세한 규례를 넘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웃의 영을 살리는 일에 자율적으로 참여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율법에 대하여 죽으시고 성령의 권능이 자리를 대신하셨기 때문에 세세한 규례를 지켜야 법적 의무감이 사라진 것이다. 의무감으로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규례의 틀로부터 벗어나, 영적으로 자유케 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성도들이 율법의 하나인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는 사실도 강박감이 있는 의무가 아니라 성령의 마음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상 의무의 십일조가 아니라 사랑의 헌금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또한 신자들은 매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며,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강박감으로 죄를 여기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들을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으니, 죄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옛사람의 탐욕이다. 그래서 때문에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이다.

신자가 죄에 대하여 날마다 죄를 범할 수밖에 없음을 믿고 날마다 죄를 자복하며 용서를 구하면, 죄에 대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살아있는 것이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여, 세상의 교회에서 걱정 그만하고 죄에서 벗어나라고 하면 순간부터 이단 취급을 받게 된다. 누구의 말이 옳은가? 그들은 정말로 시험을 받게 것이다. 사람은 죄를 짓기 마련인데,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 주문을 외우듯이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실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죄에 대하여 예수와 함께 죽고 죄에서 해방된 자유인이 것을 믿겠는가?

그것이 율법이든지 복음이든지 둘 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뜻이 있다. 인간은 죄인이며,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들인데,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속의 죽음을 하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규례를 정하고, 복음은 죄에서 해방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죄의 그물과 같은 율법에서 벗어나 성령의 능력으로 전진하라고 하신다. 그는 법을 고집하는가? 언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언약은 조문으로 된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생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다. 항상, 율법이든 복음이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강박관념의 율법이 아니라, 죄로부터 자유인으로 당당하게 성령의 인도를 받고 나아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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