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을 여전히 주장하는 자들

 

십일조을 여전히 주장하는 자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셨다.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신 것은 율법에 근거한다. 레위기 27 30절에『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라고 했는데, 오늘날 십일조의 근거를 이 규정에 근거하여 찾기도 하고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이 전쟁 후 멜기세덱에게 바쳤다 라든가 야곱이 서원한 기원을 찾기도 한다. 하나님이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신 이유는 레위기 25 23절에서 찾을 수 있다.『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에 대하여 나그네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그네, 우거하는 자(외국인)이므로 땅의 소산을 하나님께 십일조(소작료)로 드려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에 나그네로 있으므로 나그네라는 사실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레위기 25 42절에서『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레위기 25 55절에서는『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라고 했다. 하나님의 땅에 종(품꾼)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땅을 경작하는 자들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이 어떻게 증거했는가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서 11 13-14절에서 보면『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이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조상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본향을 찾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 땅에 대해서 나그네이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 하나님의 나라인가? 하나님으로 부터 왔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십일조를 내라고 한 것이다. 오늘날 십일조를 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너무도 모르는 결과다. 하나님 나라가 본향이라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 바로 씨(그리스도)의 약속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통해서 씨의 약속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나그네라는 것을 깨달으면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고 있다는 의미가 무언인지, 그 약속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3 23절에서 다시 십일조를 설명하고 있다. 십일조를 철저히 했지만 정작 율법이 말하는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과거의 사실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율법이 말하는 바 의와 인과 신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않으면 안된다. 의는 죄인에 대해서는 가두는 것을 말한다. 땅에서는 나그네이며, 하나님으로 부터 왔으나 이 세상에서는 흑암에 갇혀있는 인생들이라는 것이다. 흑암에 갇혀 있는 것이 바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의다. 모든 인간들이 갇혀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인은 긍휼을 말한다. 율법에는 긍휼과 자비가 있다. 갇혀있지만,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떠난 것을 깨닫고 길을 찾을 수 있는 긍휼을 주신 것이다. 신은 믿음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갇혀있지만,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해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바로 율법인 십일조 안에 있다 라는 말씀이다. 십일조를 내면서 약속을 깨닫고 믿음을 가지는 것이 십일조의 의미를 말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것들을 다 버렸다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십일조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데,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예수님이 마태복음 23 2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28 20-22절에서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하여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서원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하는 것은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야곱이 가는 길은 인생 길을 의미하며, 세상에 태어나서 이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문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영적 양식과 의의 옷을 입히시며, 세상을 이기게 하시는 것이다. 야곱이 세상에 있는 동안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는 것이 평안이다. 그래서 영적 음식을 먹고,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되게 하신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하나님으 집은 성전을 의미한다. 성전은 예루살렘(세겜 땅) 성전을 의미한다. 이 말은 참 성전인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야곱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참 성전은 드려지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래서 그와 연합된 자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다. 연합되는 것은 인자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의 양식과 의의 옷을 입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에게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야곱은『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라고 서원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야곱이 하나님께 물질의 십분의 일을 드렸다고 말하는 부분은 없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아서 율법 속에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렸다. 야곱이 말하는 십분의 일은 물질의 십분의 일이 아니라 영적으로 자기를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도록 드린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영적 제사와 같은 의미다. 로마서 12 1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말씀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이 바로 영적 십일조라는 의미다. 십일조는 전체를 의미하며, 그 대표의 하나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엄밀히 전체를 다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모든 것 중 자기(그 중에 십분의 일을 대표하여)를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도 십분의 일을 바치라고 하신 것은 그들이 이 땅에 살고 있지만 모두 하나님을 떠난 존재들로서 땅에 있어서는 나그네라는 것이다. 그래서 땅의 임대료로 드려지는 삶을 살도록 하셨다. 자신을 모두 드려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의 대표로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지는 삶을 살도록 했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드려지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제사도 마찬가지로 드려지는 삶이지만, 동물이 대신 죽은 것으로 그들은 생각하고 만 것이다.

사람들은 십일조를 세상의 재물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러나 십일조의 궁극적인 의미는 영적으로 하나님나라로 돌아가야만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는 마태복음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물질은 세상의 지배자에게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다고 했는데, 이는 영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멜기세덱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영원한 제사를 드렸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영원한 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래서 영적 산 제물이 되었으며, 영적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다.

이스라엘은 수천년 동안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왔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들은 하나님께 영적 제사를 드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질을 바치면 할 일을 다했다는 식이다. 물질 중에서 십분의 구는 백성들의 것이고,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은 모든 것을 드리는 개념이며, 그 중에서 대표하여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다. 비록 물질을 드리지만 자신을 드리는 개념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제 모둔 것을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물질의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전히 물질의 십일조를 말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영적 제사를 드린 적도 없는 자들이 된다. 교회 사람들이 영적인 의미도 모른채, 십일조를 물질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자신을 전부 하나님께 드린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림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된다. 자신을 드린다는 것은 자신도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라는 존재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옛사람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염소가 되며, 그렇지 못한 자는 아사셀 염소가 되는 것이다. 죽은 자는 첫째 사망에 참여한 자가 되고, 죽지 않은 자는 둘째 사망의 음부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영적 십일조)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을 쳐서,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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