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를 잘못 전하는 자들

 고린도후서 517절『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받아주신다. 이것을 속량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값으로 죄의 그물 안에 있는 자를 사시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14절에서『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판단컨데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한 사람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의 죽음과 연합되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다. 15절에서『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하려 함이니라』그러므로 자기자신을 위하여 사는 자는 예수와 함께 죽지 않은 자다.

예수의 이름을 믿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린도후서 5 15절의 의미를 깊히 묵상해야만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면서도, 예수믿으므로 천국간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천국가는 믿음은『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않는다』는 말이다. 세상 사랑하는 마음과 예수 사랑하는 마음은 함께 있을 수 없다. 요한1서에서『세상과 벗된 자는 하나님과 원수』라고 했다.『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다.『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그 안에 아버지의 사랑이 없다』고 했다. 요한1 2 16절에서『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시는가?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원래 낙원과 같은 곳인데,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하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와서 오염이 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에덴동산은 이 세상에서의 에덴동산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아닌 이 세상은 범죄한 영을 가두기 위한 감옥과 같은 것이다. 죄인들이 있는 것이 바로 감옥이다.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들인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감옥이라고 할 수 있다. 흙으로 만든 인간은 영과 흙이 결합된 존재로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주체는 영이다. 육체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감옥인 세상의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잊어버린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감옥인 세상을 사탄에게 일정기간 관리권을 주었다. 때가 되면 다시 회수할 것이다.

누가복음 4 5-6절에서『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누가 넘겨준 것인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이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다. 영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지은 죄로 인하여 사탄이  다스리는 세상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나님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죄의 그물에서 자유를 찾으라고 하신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물에서 육의 몸이 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세례다. 베드로전서 3 20-21절에서 물은 노아시대 살았더라면 모두 물에서 죽었을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새생명으로 태어나서 영의 마음으로 양심을 회복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자가 바로 거듭난 자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된다.

세상을 위하여 살고 있으면 사단의 종이며, 죄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사단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 그래서 다시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누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고, 새 피조물이 된다. 전에 있는 옛사람과 다른 피조물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옛것은 지나가버리고 새것이 된 것이다. 옛것과 새것은 함께 하지 못한다.

옛사람은 죽어야만 새사람으로 거듭난다. 옛사람이 죽는다는 의미는 죄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죄인과 희생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므로 하나님이 죄인도 죽었음을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죄가 있지만 죄를 덮어주시는 것이다. 세상의 감옥에서도 죄인이 죽어버리면,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고 감옥으로부터 나가게 한다. 죄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죄가 있지만 죽었기 때문에 감옥으로 나가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세상에 대해서도 죽은 것이다. 세상은 감옥과 같다. 육의 몸이 죽어서 감옥으로부터 나갔는데, 영이 감옥의 생활을 그리워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감옥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두고 육이 원하는 것을 찾아 되돌아가 가는 것을 의미한다.

죽었다는 것은 율법에 대해서도 죽은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서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죄의 몸이 아니라,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이므로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고,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않는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예수와 함께 죽었는가 아닌가에 따라 진짜 믿음인지 가짜 믿음인지 구분될 수 있다. 진짜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믿음이고, 가짜 믿음은 자기가 믿는 믿음이다. 갈라디아서 3 22절에서 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 아래 매인바 되어있다고 말한다.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더 이상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로마서 8 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날마다 죄를 회개해야만 한다고 믿는 자들은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아니고, 율법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 안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해야만 하는데, 율법의 계명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죄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 죽을 수 밖에 없는 탐욕(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옛사람)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탐욕을 제거할 수 없다.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새 피조물이 아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새 피조물은 거듭난 자를 의미한다. 갈라디아서 615절에서『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이스마엘은 육체로 난 자로서 율법 아래 있지만, 이삭은 성령을 따라 난 자라고 했다. 갈라디아 교회는 이들이 섞여있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 자만이 구원받는 것을 사도바울이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가나안에 들어가는 믿음이라고 설명했다. 가나안은 그리스도의 충만함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6 14절에서 설명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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