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의 의미를 잘못 전달하는 자들

 고린도후서 214-17『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그리스도의 향기는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함께 새생명으로 부활한다는 것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거룩하게 사는 것, 선한 행동으로 살아가는 것, 하나님 말씀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는 것 등으로 오해한다. 이렇게 말하는 자들은 성경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향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통해서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향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이 자기 이웃의 죽었던 영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이웃 사랑이 없는 자들이며,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는 자들이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이 살아난 자들은 이웃의 영을 살리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6 63절에서『영을 살리고 싶어하신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옛사람에게는 육체가 중요하지만, 새사람은 영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옛사람을 버리고 새생명으로 나가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로마서 6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육체로 비롯된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옛사람을 죽이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고, 영의 세계를 향하여 나가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죄인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죄의 감옥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아무도 율법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라고 말한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은 자만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은 자가 되는 것이다. 옛사람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을 가진 자이며, 혼적인 존재라고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함을 입은 자는 영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감옥에서도, 갇힌 자들이 구해야 할 것은 감옥에서 올바른 행실을 하고, 넓은 감방에서 지내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하는 일이 주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온 것을 회개하고, 부모와 가족이 있는 바깥 세상을 바라보며 새사람이 되어 나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를 떠나 세상에 온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갇혀 있는 자들로서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탐욕을 회개하고, 영적 존재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가 아닌가의 확실한 증거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데서 비롯된다.『옛사람이 죽어야 하는데』라고 날마다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 나라로부터 세상에 들어온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고,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옛사람의 죽음을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옛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 개선하거나, 죽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다시 새생명으로 태어난 자들은 이웃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향기인 것이다. 성령이 함께 하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도덕적이라는 말은 양심이 살아서 움직이는 그런 마음이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지 않은 자들은 비록 양심이 살아있는 자들도 있을지라도, 양심보다 법을 중시하며, 영의 세계보다 육의 현실적인 세계를 중요시한다.

영적인 존재들은 성령이 인도하시는 바에 따라 행동하므로 믿음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지만, 육적인 존재들은 어떤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평가하려고 하는 것이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바는 성령의 열매로 알 수 있다. 갈라디아서 522-23절에서 말하는 바『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성령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고 말을 하면서, 옛사람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그런 사람들도, 항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방법 외에는 도무지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날마다 죽은 자임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연약함을 아시고 로마서 8 1-6절에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우리가 날마다 십자가를 부여잡을 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다시는 죄를 묻지 않으신다.

내가 선한 것을 위하여 무엇을 해보아야겠다는 의지, 거룩한 삶을 위해 결단하는 삶,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해야 겠다는 결심 등은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행위에 불과 한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행할 수도 없으며, 단지 흉내만 내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의 모습인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난 것을 믿으며,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양심으로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세례의 의식으로 표현한다. 물에서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 21절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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